어느 팀이 기선을 제압하고 게임 분위기를 주도하느냐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 흐름과 관련한 가장 보편적 표현이 '위기 뒤 찬스, 찬스 뒤 위기'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예상 밖 대반전이 일어나곤 한다. 찾아온 찬스를 살리지 못하면 반전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찬스 다음엔 위기가 필연이고 위기 뒤엔 찬스가 찾아오기 마련. 그만큼 야구는 분위기 싸움의 비중이 크다.
그래서 흐름을 갖고 오느냐 내주느냐에 필요 이상의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 '2012 팔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까지는 삼성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1차전 이승엽 선제 투런, 2차전 최형우 만루포는 분명 주도권을 삼성 쪽으로 끌고 온 결정타였다.
27일 내린 비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는 분위기 반전의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비 덕분에 지친 SK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28일 열린 3차전에서 기적 같은 대역전극을 펼치며 1승 이상의 자신감을 충전했다. 그 분위기가 4차전에서 이어질 경우, 삼성은 시리즈 내내 SK에 끌려갈 공산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낳았다.
선취점 중요성 컸던 4차전
그래서 4차전은 여느 때보다 선취 득점의 중요성이 컸다. SK 선발 김광현과 삼성 선발 미치 탈보트는 전날 난타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초반 팽팽한 투수전을 펼쳤다. 3회까지 탈보트는 단 하나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는 퍼펙트 투구를 기록했고, 김광현 역시 배영섭에게만 2개의 안타를 허용했다.
팽팽한 투수전일수록 선취점이 주는 의미는 더욱 크다. 선취점의 좋은 기회를 가진 팀은 1회초 선두타자 배영섭이 만든 무사 1루를 날린 삼성이었다. 삼성은 4회초에도 선두타자 이승엽의 2루수 내야안타와 박석민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선취점의 기회를 맞았다.
다음 타석에는 5번 최형우. 최형우는 전날 3차전에서 3점 홈런을 때렸을 정도로 장타력을 갖춘 타자다. 하지만 상대 선발 김광현과의 시즌 맞대결 타율은 7타수 1안타. 그 안타 하나가 홈런이었지만 상대 타율은 0.143에 불과했다.
좌투수에 좌타자라는 매치업에 일단 약점이 있고 김광현과의 상대 타율에서 최형우는 시즌 내내 약했다. 게다가 전날 대역전패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선취점이 절실했다. 그런데 류중일 삼성 감독은 최형우에게 강공을 선택했다.
'최형우 강공'이 불러온 나비효과
최형우는 김광현의 4구째 높은 공을 잡아당겼다. 타구는 우중간으로 향했지만 SK 우익수 임훈이 이미 우중간에 수비 위치를 잡고 있었다. 당연히 안타 코스라고 판단한 2루 주자 이승엽은 타구를 보지 않고 3루로 스타트를 끊었다.
타구는 임훈 글러브에 들어갔고 2루로 중계됐다. 외야 수비 위치를 미리 파악하지 않은 이승엽의 어이없는 주루사로 인해 순식간에 더블 아웃. 무사 1,2루의 선취점 기회가 강공에 이은 주루 미스로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반대로 SK 벤치의 수비 시프트가 적중했다.
최형우의 홈런 2개가 잡아당긴 타구에서 나온 것을 파악한 SK 벤치는 바깥쪽 승부를 유도했고, 이에 따른 적절한 수비 시프트가 이뤄졌다. 이 같은 수비 시프트가 주루에 능한 베테랑 이승엽의 본헤드 플레이를 유도한 셈이다. 최형우 타석에서 희생번트를 통한 선취득점 대신 강공으로 대량 득점의 모험수를 택한 삼성 류중일 감독의 선택은 완전히 빗나갔다.
최형우의 김광현 상대 타율을 감안했을 때, 시즌 데이터에 의한 작전을 구사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다음 타순은 강봉규-조동찬-진갑용-김상수-배영섭으로 이어지는 우타 라인의 연속이다. 김광현이 허용했던 2안타가 우타자 배영섭에게 허용했던 것이다.
실점 위기를 극적인 수비 시프트로 모면한 SK는 4회말 박재상의 우월 선제 솔로포와 최정의 좌월 백투백 솔로포로 순식간에 2-0으로 앞선 뒤 이호준의 우익선상 2루타에 이은 김강민의 좌전 적시타로 3점을 뽑아내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SK의 살아난 '원샷원킬 본능'
'위기 뒤 찬스'라는 진부한 야구 격언을 제대로 살려낸 SK의 집중력이 돋보인 4회였다.
삼성과 SK의 4차전은 사실상 4회초 보내기번트 대신 택한 강공으로 인한 더블아웃과 본헤드성 주루플레이, 4회말 상대의 허를 집요하게 백투백 홈런으로 물고 늘어진 SK의 승부사 기질에 이미 기울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 뒤 바로 찬스를 살려낸 SK의 집중력과 찬스 뒤 단 한 번의 위기에서 바로 무너진 삼성. 그 차이가 바로 4차전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데이타와 철저한 분석에 의한 수비시프트로 더블 아웃을 이끌어낸 SK와 단순한 타자의 감에 의존, 상대 타율을 감안하지 않은 강공의 삼성. 축적된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3차전에서 1패 이상의 데이지를 입었던 삼성은 4차전에서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시리즈 주도권을 SK에 내준 채 오는 31일 잠실 5차전에서 반격의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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