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유형으로 흔히들 운장, 덕장, 지장, 용장 등으로 구분한다. WBC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류중일(50) 감독 스타일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류 감독은 작년 한국시리즈를 2연패 위업을 달성한 뒤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자신을 스스로 운장(運將)이라고 분류했던 것. 명장(名將)이라기 보단 복장(福將) 혹은 운장에 더 가깝지 않겠냐며 자신을 낮췄다.
사실 선수 시절보다 오히려 지도자 시절에 더 꽃을 피우고 있다. 물론 선수 시절에도 경북고-한양대를 거치며 국가대표 주전 유격수로 맹활약했지만 지도자로서 더 만개하고 있다. 감독 부임 첫해 트레블(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아시아시리즈) 달성에 한국시리즈 2연패까지. 감독계 '엄친아'다.
감독 초년병으로서 '야신' 김성근 감독도 못해낸 트레블을 루키 감독이던 그가 해냈다. 게다가 감독 2년차로 야구로는 세계 최고 권위의 WBC 대표팀 감독까지 맡았으니 그야말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류 감독이라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행착오를 누구보다 단시간 내 극복하고 정상대열에 합류했다는 게 다른 점이다. 가장 큰 시행착오는 한 번 믿은 선수에 대한 믿음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나믿가믿' 해프닝이었다. 2011시즌 삼성은 타자 용병 라이언 가코를 영입, 공격력 강화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가코는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류 감독은 시즌 중반까지 교체하지 않고 중심타자로 기용했다. 결국 덕 매티스로 교체됐지만 류 감독의 야구는 믿음이 키워드라는 것을 드러낸 계기였다.
작년엔 에이스 차우찬 부진이 이어졌는데도 류 감독은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채태인과 최형우, 배영섭 등 중심타자들이 동반 부진으로 시즌 초반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선수들이 살아나리라는 믿음 하나로 팀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버텨냈다.
후반기에 살아난 최형우와 배영섭이 살아나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 류 감독의 뚝심 야구는 다시금 빛을 발했다. 결과로는 뚝심이었지만 과정에선 아집처럼 곡해될 소지도 없지 않았다. 결과론으로 류 감독은 믿음과 포기의 황금비율을 가장 잘 파악한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역대 명장은 하나같이 뚝심과 포기의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이들이다.
그렇다면 류 감독이 WBC 대표팀에서 삼성처럼 뚝심을 가져갈 수 있을까. 일단 뚝심의 구사 빈도를 다소 줄일 가능성이 크다. 정규시즌과 같은 장기전과는 달리 WBC는 단기전이다. 믿음과 뚝심을 고집하다보면 돌이킬 수 없는 악수를 둘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WBC에선 선수에 대한 맹신보다는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을 위주로 전력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 남아도는 1루수를 봐도 그렇다. 당일 선발투수에 따라 클린업은 유동적일 가능성이 높다. 좌완이 선발일 경우 이승엽을 벤치로, 김태균과 이대호를 선발로 내보낸다. 우완 선발일 경우엔 김태균이 벤치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테이블 세터진도 이용규와 정근우가 번갈아 타석에 설 수 있다. 우완일 경우 이용규가, 좌완일 경우 정근우가 들어서는 탄력적인 테이블세터 운용 계획을 류 감독은 이미 밝힌 바 있다. 작년 전반기 내내 1할대 타격 슬럼프에 빠진 배영섭에게 '부동의 1번타자'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뚝심 야구를 주창한다고 해서 창조적인 야구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2번 타자 박석민'이다. 작년 삼성이 시즌 초반 최악의 타격 슬럼프에 빠졌을 때, 주포 박석민을 2번 타순에 깜짝 기용한 적이 있다.
류 감독은 부담이 큰 WBC 대표팀 감독을 스스로 원했다. 소속팀 동계훈련도 포기한 채, WBC 대표팀을 이끈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더욱이 역대 최약체 대표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 잘 해도 본전, 못하면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을 수도 있다.
뚝심은 차선책이 마땅치 않을 때 생명력을 얻는다. 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의 총집합체다. 감독 특유의 뚝심은 줄이고 탄력적인 용병술을 구사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얻을 수도 있다. '팀 코리아'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적을 늘 일으켰다.
재작년 트레블 달성 뒤 류 감독은 “WBC 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비록 감독 경력 2년의 짧은 기간 큰 경기는 누구보다 많이 치르며 결국엔 WBC를 겨냥했다.
브랜치 리키는 말했다. '운(運)은 계획에서 비롯된다(Luck is the residue of design)'고. 스스로 운장이라며 겸손함으로 몸을 낮춘 그지만 철저한 사전준비와 실천으로 WBC 사령탑에 승선했다. 진인사대천명의 류 감독이다. 내달 2일, 그의 활은 시위를 떠나 네덜란드 벤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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