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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 역사교과서 논쟁, 고조선도 부정해야?


입력 2013.10.21 11:42 수정 2013.10.21 14:49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정사 '삼국사기'만 강요하면 고조선은 역사왜곡이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로 촉발된 역사교과서 논쟁은 정치적 논란으로 확산되는 좋지 않은 선계가 되고 있다. (사진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표지 캡처)
고려의 문벌귀족 김부식은 1145년 인종의 명을 받들어 삼국시대 역사를 정리한 삼국사기를 만든다. 총 50권 분량의 삼국사기는 신라를 삼국의 중심으로 놓고, 유교적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국가 주도로 집필됐고, 삼국의 왕과 사건의 연도, 인물 등이 사실관계에 따라 기록돼 우리나라의 정사로 인정받는다.

반면 1281년 보각국사 일연이 집필한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를 고조선으로 본다. 일연은 원의 간섭과 권문세력의 득세로 왕권이 약해지고 국력이 쇠퇴하던 시대상을 반영, 백성들의 자긍심을 높이고자 단군신화를 인용한다. 삼국유사는 사실관계보단 신화와 설화를 중심으로 역사의 흐름을 정리했다.

앞서도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정사는 삼국사기다. 삼국의 멸망과 삼국사기의 편찬은 시기적으로 200년 이상 차이가 있지만, 집필진이 국가 주도로 구성된 나름의 특임조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사서 가운데 가장 객관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도 큰 틀에선 삼국사기의 내용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삼국유사의 고조선이다.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도 삼국유사의 내용을 토대로 단군신화가 기록됐다. 삼국사기가 정사라면 이에 반대되거나 없는 내용은 거짓이 되는 게 당연한 논리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 다양한 기록과 관점을 인정한다.

대부분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 E. H. Carr의 정의를 인용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지나간 사실은 기억으로 끝나지만, 기록으로써 역사가 된다. 다시 역사는 후세의 관점으로 재평가되고,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 이 때문에 역사의 옮고 그름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특정 기록만 인정한다면 야사의 단군조선도 부정해야 하나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으로 촉발된 역사왜곡 문제가 교육부 국정감사의 최고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권은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있다며 검증 취소를 요구하고 있고, 여권은 교학사를 제외한 교과서 7종이 군사정권 시대의 경제성장과 북한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여야의 입장은 한결같다. 여당은 좌편향, 야당은 우편향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좌편향, 혹은 우편향으로 기술된 역사가 틀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정치권이 나서서 옳고 그름을 가르는 모습이다. 자신들이 배운 역사만 진실이라 고집한다.

물론 역사가 한쪽의 관점에 편향될 소지는 있다. 고려부터 구한말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는 왕실의 기록에 의존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처럼 많은 기록은 패자를 악인으로 묘사한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희빈 장씨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는 야사인 인현왕후전을 인용, 장희빈을 악인으로 묘사하고 사약을 받는 장면을 비참하게 그렸다. 반면 정사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장희빈은 스스로 사약을 받았으며 사후에는 왕후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뮤지컬 속 명성황후는 망국의 왕비로서 뛰어난 외교력과 정치적으로 나라의 독립을 유지한 철의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쪽의 평가다. 다른 한쪽에선 외세를 내정에 개입시키고 외척을 정치에 끌어들여 나라를 망치게 한 장본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야권이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문제로 지적하는 건 일제강점기와 건국초기, 군사정권에 대한 평가다. 친일사관에 의거해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을 미화했다는 주장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7종 교과서가 북한 주민의 인권, 군사정권 시절의 경제발전에 대해 침묵하고, 북한을 우호적으로 기술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다양한 기록과 해석이 존재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특정 역사가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한쪽의 역사가 옳으므로 다른 한쪽의 역사가 틀렸다는 논리대로라면, 삼국사기를 정사로 인정하는 입장에선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게 맞다. 삼국사기의 출발점은 삼국시대이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논란의 쟁점은 편향된 관점과 기술의 오류다. 기술적 문제의 경우 해당 시기의 여러 기록을 검토해 얼마든 수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또 이는 교학사뿐 아닌 7종 교과서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다만 관점의 문제는 다르다. 정치권도 결국 기록을 보고 역사를 판단한다. 특정 기록이 진실이라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기록이 틀렸다 주장하는 건 억지다. 유교적 관점의 삼국사기와 불교적 관점의 삼국유사가 다른 것처럼 과거의 기록도 해당 기록을 쓴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이 역사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이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사명감보다는 역사를 통해 정쟁의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강해 보인다. 역사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현재 논란이 되는 드라마 ‘기황후’에 대해 정치권은 왜 개입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치권이 무슨 권리로 역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수많은 학자들의 주장을 뒤엎을 만큼 정치인들이 역사 분야의 전문가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의 지적 수준과 판단력이 일반 국민과 비교해 월등한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의 정치인들은 모두 근현대사를 직접 경험한 역사의 산 증인인가.

야권의 입장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옹호하면 친일이 되고, 여권의 입장에서 7종 교과서 문제에 침묵하면 종북이 된다.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국민은 편이 갈리고, 정치권은 이를 이용한다. 내 편이 많아지면 이기는 땅따먹기와 유사하다. 정치인들에게 역사는 목적이 아닌 정치공세 수단에 불과한 듯 보인다.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정치권의 외침이 진심이라면 역사 자체를 목적으로 인식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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