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은 통진당과 정의당 공히 전신인 민노당 시절 만든 것"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태의 초점이 통진당의 강령으로 맞춰지자 정의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강령은 빌미일 뿐, 이를 통해 정부에 비판적인 진보진영 전체의 정당성을 흔들려는 시도라는 주장이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7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당 상무위원회의에서 “이번 정당해산 청구는 통진당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문제”라면서 “통진당의 강령은 대한민국 헌법을 벗어나지 않으며 과거 진보정당의 강령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도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청구는 매우 무리하고 잘못된 일”이라며 “통진당의 강령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지만, 14년 동안 헌법의 틀 안에서 존중돼온 강령을 느닷없이 정당해산 근거로 삼는 것은 민주주의에 매우 무지한, 한쪽 날개로만 날겠다는 편협한 극우적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6일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사회의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판단해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해산심판,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각각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정당 활동 정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법무부는 통진당이 헌법가치에 반한다는 근거로 통진당의 강령과 활동을 문제 삼았다.
논란이 되는 강령의 대표적인 문구는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이 주창한 북한의 건국이념과 같은 맥락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북한의 민중은 일을 하는 사람만을 의미하므로 자유주의, 국민주권을 표방한 대한민국 헌법가치에 위배된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이석기 통진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RO(혁명조직)의 이적단체 여부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위법을 단정할 수 없다. 또 이 의원과 RO의 혐의가 인정된다 해도 이를 당 차원의 활동으로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법무부는 통진당의 강령, 정책을 내세워 통진당의 위헌성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이 반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통진당 강령의 경우, 전신인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기초로 한다. 또 합당 시점에는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지도부도 강령 작업에 참여했다. 지난해 부정경선 사태를 겪으면서 참여계, 진보신당계 인사들이 이탈했지만, 현재 정의당 당원들도 통진당 강령을 뿌리로 둔다.
이와 관련,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지난 6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법무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동당 시절에 있던 일”이라면서 “(합당 후) 통진당이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처벌받아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그는 또 “(지금 강령은) 유시민·심상정·이정희·조준호 공동대표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굉장히 순화된, 내가 볼 때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강령인데, 여기에 이석기 사건 등으로 형성된 이미지와 연결해 작년 5월에 만든 강령을 북한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는 자체가 과대포장”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통진당의 강령은 진보진영 전체의 강령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때문에 통진당의 강령이 종북, 위헌을 의미한다면 정의당은 물론, 민노당 및 통진당 출신 세력의 정당성도 무너진다. 이석기 사태, RO 사태와 관련해선 통진당과 선을 긋던 정의당이 강령 문제에 있어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다.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은 “지금 통진당의 강령이 위헌이라면 왜 14년 동안 아무 말 안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문제를 삼는 것이냐”며 “강령을 이유로 당을 해산시킨다는 것은 앞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선 모두 비슷한 잣대를 들이대 종북몰이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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