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억 FA 푸어’ 피해자는 결국 구단과 팬
부상 또는 부진, 먹튀 피해 고스란히 떠안아야
삼성-LG 등 참고할 좋은 사례 있었음에도 무시
사상 최대의 돈이 오간 프로야구 FA 시장이 막을 내렸다.
이번 FA 시장은 대어급부터 준척급까지 무려 15명(윤석민 제외)의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가운데 6명이 유니폼을 바꿔 입는 대이동도 함께 있었다.
이들의 계약 액수는 실로 엄청나다. 2005년 삼성 심정수(4년간 60억원)를 뛰어넘는 잭팟이 무려 3번(강민호-정근우-이용규)이나 터졌고, FA 15명의 전체 몸값은 532억 5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돈이 오간 2011년(261억5000만원)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액수이며, KBO가 시즌 초 발표한 프로야구 9개 구단 선수 406명의 총 연봉(447억 2600만원, 외국인·신인 선수 제외)을 훌쩍 뛰어넘는다.
야구계 많은 인사들이 ‘몸값 거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FA 시장의 거품은 이제 막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내년에도 대어급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게 되며 자금력이 탄탄한 10구단 KT가 1군에 진입하기 때문에 시장 과열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형 계약을 맺은 구단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다. 롯데는 이대호 등 대형 선수들을 모두 놓치자 관중이 급감했고, 부랴부랴 강민호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며 눌러 앉히는데 성공했다. 최하위를 전전하던 한화 역시 류현진의 유산(포스팅 비용)을 들고 국가대표 테이블세터를 데려왔고 톱타자를 잃은 KIA는 이대형에게 웃돈을 얹어줘야 했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자세로 당장의 불을 껐지만 이는 향후 부메랑처럼 날아와 구단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즉, 부동산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하우스푸어’처럼 프로야구에도 ‘FA푸어’가 닥칠 수 있다는 뜻이다.
넥센을 제외한 프로야구 각 구단들은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 팀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선수들 몸값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모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에 만약 모기업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구단이 짊어지게 된다.
또한 모기업 상황과 관계없이 FA 몸값 거품의 폐해는 결국 팬들에게 돌아간다. FA에게 지불한 구단 운영비를 메우기 위해 티켓 또는 관련 상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이택근에게 무려 50억원(4년)을 퍼부었던 넥센이 좋은 예다. 선수들 몸값 폭등의 시발점이기도 했던 당시 계약 이후 넥센은 목동 구장 입장료를 대폭 끌어 올렸다. 수익 구조가 미국, 일본에 비해 열악한 한국 야구는 관중 수입과 유니폼 판매 외에 기댈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선수들 간의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고액으로 계약한 강민호의 몸값은 연평균 18억 7500만원에 달한다. 이는 프로야구 최저 연봉인 2400만원의 약 78배에 달한다.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48만 달러)과 비교하면 3750만 달러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빅리그 최고 연봉자인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연평균 수령액은 2750만 달러(10년간 2억 7500만 달러)에 그친다.
‘FA 푸어’의 가장 끔찍한 비극은 ‘먹튀’ 발생 가능성이다. 초고액 연봉자들이 부상 또는 부진으로 제몫을 해주지 못하더라도 구단은 최대 4년간 빠짐없이 거액을 입금해줘야 한다.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하우스푸어와 다를 바 없다.
아쉬운 점은 ‘먹튀’에 대한 대처법이 이미 있었음에도 대형 계약을 체결한 구단들은 선례를 참고조차 하지 않았다.
앞서 삼성은 심정수와 최대 60억원의 계약을 맺었지만, 플러스 및 마이너스 옵션 10억원을 매겼다. 이로 인해 보장액은 50억원에서 출발했고, 심정수는 플러스 옵션을 2억원 밖에 챙기지 못한 반면, 마이너스 옵션으로 2억 5000만원을 뱉어내 실질적으로 그가 받은 총액은 49억 5000만원에 그쳤다.
LG 박용택도 옵션과 관련, 가장 훌륭한 전례를 남겼다. 당시 박용택은 4년간 최대 34억원의 대형 계약을 맺었는데 플러스 인센티브가 과도하게 책정된 ‘반쪽 대박’이었다. 박용택의 보장금액은 총액의 50%도 안 되는 15억5000만원(계약금 5억원+연봉 3억5,000만원)이며, 나머지 18억5000만원은 옵션으로 책정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였지만,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용택은 옵션의 대부분을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널리 쓰이는 바이아웃 조항을 도입했다. SK는 지난 2003년 현대에서 이적한 박경완과 4년간 총 23억원(계약금 10억원+연봉 3억원)에 계약했는데 3년간 일정 수준의 성적을 달성하면 4년차에는 4억원에 계약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박재홍과는 2+2년간 총액 15억원(계약금 5억원+연봉 4억원+옵션 2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즉 첫 2년간은 15억원을 받고, 옵션을 달성하면 계약기간이 2년 추가된다는 뜻이었다. 두 선수의 FA 계약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FA 계약자들을 살펴보면 옵션이 심하게 축소돼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비공개 발표일 수도 있다). 한화는 내년이면 32세가 되는 정근우에게 총액의 10%에 불과한 7억원의 옵션을 매겼다. 현재 부상 중인 이용규도 67억원 중 옵션이 7억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강민호의 경우는 옵션이 아예 없다.
최근 FA 선수들은 과거와 달리 고액 연봉에 대한 책임감과 한층 수준 높아진 선수 관리 체계로 ‘먹튀’가 현저히 줄어든 모양새다. 그렇다고 나이에 따른 노쇠화나 예기치 못한 부상 등 돌발변수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각 구단에는 제대로 몸값을 하지 못하는 FA들이 즐비하다.
거품을 잠재울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몸값을 당장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선수가 ‘갑’이 돼 구단이 끌려가게 된 모양새는 뺏고 빼앗긴 시장 속에서 공동체 운명을 저버린 구단들 스스로가 부추긴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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