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는 교구별 독립 운영, 각 교구와 소통 지속적"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종교계의 정치개입과 국론분열 행위를 겨냥해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청와대가 후속조치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이 자칫 청와대와 천주교 간 갈등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
청와대는 우선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행태 전반을 지적한 것이지, 특정 종교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천주교는 교구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각 교구와 소통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문제가 된 전주교구(정의구현사제단 중 전주교구 소속 신부들)는 천주교의 공식조직인 전주교구와는 다른 조직인 만큼, 우선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교·기독교계 불똥에 '난감'…천주교와 관계 개선도 숙제
앞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신부들은 지난 22일 박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미사에서 박창신 원로신부는 “부정선거로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유신시대로 복귀하고 있다”며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하게 한 이명박 대통령을 구속하고 박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같은 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도는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 그게 기도 아니냐.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면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 되길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다음날 박 신부가 미사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정당화한 발언을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의 비판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이 수석은 박 신부가 NLL(북방한계선)을 독도로 비유하며 연평도 포격 사건의 책임을 한미연합훈련으로 돌린 데 대해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박 대통령까지 나서 박 신부의 발언과 전주교구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며 “앞으로 나와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각 수석들에게는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주문했다.
하지만 이후 진보 성향의 불교와 기독교 성직자들도 잇따라 시국선언을 예고하고 나서면서 청와대도 당황스러운 기색이다. 당초 박 대통령의 발언은 박 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겨냥한 것이었으나 종교계의 시국선언에 대한 비판으로 오인되면서 천주교는 물론, 종교계 전반이 반발하고 나선 것.
승려 모임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오는 28일 서울 조계사에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등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기독교 목사들의 모임인 전국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는 다음달 16일부터 서울광장에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규탄하고, 정권퇴진을 촉구하는 금식 기도모임을 열 방침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측은 26일까지 언급을 삼가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편, 상반기 예정됐던 박 대통령과 천주교 지도자들 간 오찬도 차일피일 연기되고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7월 19일과 25일 각각 기독교, 불교 지도자들과 만나 국민대통합과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종교계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시기를 즈음해 천주교 지도자들과 자리도 예정돼 있었지만, 박 대통령과 천주교 지도자들 간 일정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불거지진 않았지만,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와 천주교 간 갈등은 미묘하게 지속돼왔다. 지난 15일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평화위원회는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고, 앞서선 대구대교구를 비롯한 15개 천주교 전국교구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청와대 측은 “아직까지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천주교 측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