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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의 기름 떡볶이와 시진핑의 뱡뱡면 차이는


입력 2014.02.23 10:00 수정 2014.02.24 14:13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한상(韓商)과 화상(華商)

글로벌 무대에선 '오픈 엔디드' 약속도 중시해야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을 방문, 떡볶이 맛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3일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기름떡볶이를 사 먹은 통인시장 ‘효자동옛날떡볶이집’이 완전 대박 났다. ‘케리떡볶이’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이다. 케리 장관의 통인시장 방문은 성 김 주한 미 대사가 추천했다 한다. 방문국내 문화체험 언론 쇼 작업이 필요한 케리 장관이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나오면서 이 가게에 들러 기름떡볶이를 사 먹은 것이다.

하지만 케리 장관은 하마터면 ‘기름떡볶이 시식’ 대중 쇼 프로에서 망가질 뻔했다. 원래 통인시장에 있는 기름떡볶이집은 두 곳으로 시장 입구에서 가까운 ‘원조할머니떡볶이집’과 케리 장관이 방문한 ‘효자동옛날떡볶이집’이다. 평소에는 원조할머니집에 손님이 더 많은 편이었다.

애초 미 대사관 측은 원조할머니집으로 케리 장관을 안내하려고 이틀 전 성 김 주한미국대사가 직접 답사까지 했었다고 한다. 그때 “깜짝 놀랄 분이 올 수 있으니 알고만 있으시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당일 케리 장관이 통인시장을 찾기 2시간 전에 미 대사관 직원이 다시 원조할머니집을 찾아 “높은 분이 방문할 수도 있고 일정 때문에 못 들를 수도 있다”고 친절하지만 애매하게 말하고 갔다. 그러자 할머니가 높으신 분을 기다리지 않고 그날 분량을 남김없이 팔아버렸다.

오후 7시쯤 20분쯤 드디어 그 높으신 분들이 가게를 찾았다. 헌데 아뿔사 펑크! 불행중 다행으로 케리 장관 일행은 임기응변으로 이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효자동옛날집에서 기름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었다. 이 오발탄 해프닝에 대해 김 할머니는 “높은 사람이 와봤자 나보다 높겠어!” 라고 생각해 떡볶이를 다 팔아버렸다며 “케리 장관을 못 모신 것이 크게 아쉽지는 않다”고 했다 한다.

양안(兩岸) 화해의 메시지 ‘뱡뱡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8일 대만의 롄잔(連戰) 국민당 명예주석을 맞은 만찬에 산시(陝西)성 전통국수인 ‘뱡뱡면’을 내놓았다. 두 사람의 부친이 모두 산시성 출신인 점을 감안하여 ‘고향의 맛’으로 환대한 것이다.

뱡뱡면은 넓적한 면에다 고추를 얹은 산시성의 향토요리로 모양도 특이하지만 '뱡'자는 57획으로 중국에서 가장 복잡한 한자(漢字)로도 유명하다. 표준말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뱡뱡면이 나오자 춘부장들의 고향 말인 산시 사투리에다 ‘뱡’자를 써가며 화기애애하게 환담을 나눴다고 한다.

이날 만찬에는 뱡뱡면 외에도 수제비와 다진 양고기, 채소 등을 넣고 육수를 부은 양러우파오모, 밀빵 사이에 다진 양고기를 햄버거처럼 넣은 러우자모 등 산시성 토속음식이 나왔다고 한다. 헌데 재미있는 일은 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산시성의 일부 식당에서는 순발력있게 두 사람이 먹은 ‘뱡뱡면, 양러우파오모, 러우자모’를 세트메뉴로 58위안(약 1만원)에 내놨다고 한다.

자정까지 손님을 기다린 홍콩 식당

오래 전에 홍콩에 갔다가 식당에 저녁을 예약하면서 혹 만약의 경우에는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일행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날 저녁에 그 레스토랑을 찾지 못했고 그 사정을 주인에게 미처 알리지도 않았다. 다음날 오전에서야 그 식당은 우리가 오기를 자정까지 기다리다 새벽 1시에서야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너무 미안한 마음에 다음날 저녁 일정을 바꾸어 그 식당에서 푸짐한 저녁을 했다. 사족으로, 전세계에서 밤 11시에도 라스트 오더가 가능한 곳은 프랑스 식당들이다. 중국인들 다음으로 외교협상에서는 물론 민간의 국제 빅딜에서 프랑스인들이 강한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에야 요식업도 주요 서비스 산업의 하나로 인식하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시장에서 음식이나 간식을 만들어 파는 일을 그저 ‘입에 풀칠하기 위한 먹는장사’ 쯤으로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하여 이번 존 케리 미국무장관의 떡복이 사건도 그저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웃어넘기거나, 오히려 그 ‘높은 미국양반’을 물 먹인 ‘원조할머니’의 콧대 높은 자존심에 박수를 보내며 고소해 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비단 이번 케리 사건뿐이 아니어도 오찬이나 디너를 예약해놓고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헌데 이를 두고 한국식당 주인과 홍콩식당 주인의 대응이 정반대다. 대개 한국식당의 주인이라면 앞서의 ‘원조할머니’처럼 오면 오고 말면 말고 식으로 그걸 예약으로 여기지 않거나 기껏 약속해놓고 안 왔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애매한 포괄적 약속도 약속!

이런 식의 예약을 ‘open-ended’ 약속이라 한다. 제한(제약)을 두지 않은, 수정이 가능한 약속(계약)을 말한다. 해외여행시 왕복항공권 살 때 가는 비행기 편은 결정(fix)하였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편은 일정이 다소 유동적이므로 일단은 미정 상태로 오픈(open)시킨 것처럼. 글로벌 사회에선 이 오픈된 약속도 상업적 계약으로 친다. 해서 홍콩의 식당 주인은 그날 자정까지 기다린 것이다. 거기까지도 상업적 신용으로 여긴다. 그만큼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높은 사람 와봤자…" “까짓 안 팔고 말지…" 라며 대충 지레 짐작으로 안 오나보다며 (open-ended)약속을 지키지 않아 대박 기회를 놓친 원조할머니떡볶이집. 상업적 피드백 개념이 없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게다가 한국인들의 입에 붙은 이런 냉소적인 ‘그릇된 입버릇’이 비즈니스 앞날을 망친다. 이런 포괄적 약속도 중히 여기는 서비스 정신이 아니고는 결코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근자에 우리도 화상(華商)처럼 한번 세계를 누비며 장사를 해보자며 해외 교포들에게 한상(韓商)이란 말을 붙여주고 있다. 그리고 시중에는 중국인들과 유대인들의 상술을 본받자는 처세경영서들이 넘치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는 ‘케리 떡볶이’ 사건 하나만으로 짐작하고도 남겠다. 대통령에게 가방을 만들어 팔고서도 메이커를 밝히지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외국 유명 축제 그대로 베낀 지방축제,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국적조차 불분명한 남의 나라 온갖 축제들이 얄팍한 상혼으로 수입되어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머릿속을 초콜릿으로 채우는 나라 대한민국. 사대식민근성에 찌든 너절하고 천박한 흉내 내기에서 무슨 창조적 발산이 나오랴!

결국은 기본이 문제다. 대통령 혼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창조경제를 부르짖고 정부가 예산을 쏟아 붓는다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 아니다. 재래시장에서 떡볶이집을 하든 길가에서 어묵과 풀빵을 팔든 홍콩상인들처럼 오픈된 약속일지라도 자정까지 기다리는 집요한 상업적 마인드를 지닐 때에야 창조경제가 가능하겠다. 그런 게 진짜 ‘진돗개정신’이고 글로벌 매너, 글로벌 마인드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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