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깔끔과 말쑥 안친하고 우직한 촌스러움
<측근들에 듣는다 우리 후보는요⑤-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경기지사 후보>
“돈 들더라도 할 건 해야지” 보육교사 공무원화 밀어붙이기
“‘듬직! 김진표’다. 우린 이게 전략이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측근들의 일관된 답변이다.
좀 더 세련된 전략은 없느냐는 질문에 약속이라도 한 듯 또다시 ‘정책’, ‘경험’, ‘소신’같은, 소위 재미없는 단어들이 망설임 없이 튀어 나온다.
김 후보의 공직생활은 대전지방국세청 소비세과장을 맡은 1974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영세 상인들의 세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서 '세금 깎는 세무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어 93년 금융실명제 도입에 이어 99년 재무부 세제실장으로 금융 개혁을 주도했고, 김대중정부 시절이던 2002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자 한일 월드컵 청와대 대응팀장을 맡았다.
다음 해 노무현 정부 당시 초대 경제부총리로 'LG카드 사태'를 해결한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교육부총리를 맡은 2005년에는 '방과 후 학교'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으며, 2008년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당파성이 강한 민주당에서 선출직 최고위원 자리에 올라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처럼 김 후보는 경제·교육 부총리 등을 지낸 30년 경력의 경제 관료다. 대부분의 소개에서 ‘정통관료’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대표적인 정책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를 소개할 때마다 따라 붙는 오랜 단어들이 단지 긴 국정 경력으로 쌓인 이미지만은 아니다.
YS정부 시절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가 장인과 연이 끊긴 일은 그의 우직한 소신을 보여주는 일화로, 이미 측근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원내대표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한 비서관은 “그 때 우리 후보님이 금융실명제 도입을 총괄했었다. 무기명거래나 가명거래가 당연시 될 때라 금융 시장이 이러면 안 된다 해서 비밀작업팀으로 완전히 비공개로 진행됐다”면서“후보님 아내조차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근데 후보님 장인이 안양에 땅도 좀 갖고 계시고 꽤 재력가이셨던 모양이다. 장인이 사위를 불러서 금융실명제 추진하지 말라고 하셨다. 재산 많이 갖고 계신 분들은 사실 불편할 일이 많아지지 않겠느냐”면서 “그런데도 후보님이 끝까지 밀고나가서 결국 금융실명제를 관철해냈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비서관은 “우리 후보가 사위들 중 유일하게 술을 잘해서 장인이 특별히 좋아하시고 자주 불러서 술도 자주 마셨다. 그래서 그 부탁을 더 외면하기 어려웠을 거다”라며 “결국 장인이 돌아가실 때까지 후보님 얼굴을 안보셨다. 한번 결단하면 무섭게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조금은 격앙된 어조로 "웃긴 얘기 좋아하고 엉뚱한 장난도 잘 치는 사람이지만 자기 소신 밀고나가는 거 보면 진짜 무서울 정도"라고 강조했다.
신념에 대한 그의 고집은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싹이 보였다. 1971년 대학 졸업 후 신탁은행에 입사한 당시, 그는 회사 측이 고등학교 3학년 신입사원들의 이직을 우려해 졸업시험을 치르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김 의원은 회사의 횡포에 항의하는 성명을 주도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은행 상사들은 노골적으로 그를 견제하며 압박했고, 결국 김 의원은 입사 1년 후 회사를 그만뒀다.
“돈 들더라도 할 건 해야지” 경험이 낳은 보육정책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여야 후보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이슈는 김 후보의 주요 공약인 ‘보육교사 전면 교육공무원화’ 정책이다.
이미 여당 측에서는 예산 문제와 함께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나섰고, 다른 직업군과의 역차별 문제도 들어 ‘졸속 공약’,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며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을 모를 리 없는 그가 “돈이 들어도 할 건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맞서는 이유는 그의 ‘특별한 경험’에서 상당 부분 비롯됐다.
이에 대해 김 후보의 측근인 한 초선 의원은 “이 사람이 어렸을 때 아프게 자랐다. 어머니가 세 분이었다. 낳아준 어머니, 키워준 어머니, 지금 계속 모시고 사는 어머니”라며 “아픈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꼭 필요한 말”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에게는 세 분의 어머니가 계시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는 “금방 돌아오겠다”며 네 살 된 그를 데리고 황해도 연백을 떠나 월남했지만, 곧 분단이 됐고 어머니와 생이별 했다. 이어 두 번째 어머니를 맞이한 아버지는 늘어난 식구 부양을 위해 직물제조업을 시작했지만, 경제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결국 그는 또다시 어머니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고교시절 만난 어머니는 그가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드리는, 올해 아흔이 되신 노모다. 20년 전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곁을 지켰고, 김 후보를 비롯한 4남매를 키운 분이기도 하다.
해당 의원은 김 후보의 이 같은 경험을 하나하나 언급한 후, “김 후보는 어렸을 때 양육자가 자주 바뀐 경험을 직접 한 사람”이라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자꾸 바뀌면 아이들 정서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자기가 삶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악한 처우 때문에 보육교사의 사기가 떨어져 이직률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공무원 수준의 임금과 처우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후보가 “아이들에게 안정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공무원화 밖에 없다”라며 “돈이 들더라도 국가가 할 일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 고집하는 이유다.
촌스러운 바지에 ‘비버’ 별명…“이미지로 승부하지 않는다”
정치인도 깔끔한 외모와 말쑥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요즘. 김 후보는 이것들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다.
김 후보와 새벽기도회 가는 길까지 함께 하는 수행비서는 "얼마 전 경기도 안성에 있는 대학 행사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운동장에서 놀던 애들한테 공을 멋지게 차 주다가 바지가 찢어졌다"면서 "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는데 우리 후보가 대뜸 '야 내 바지 줄까'라며 진짜 바지를 벗어줬다"고 전언했다.
그는 “그래놓고 정작 본인은 무슨 등산복 같은 촌스러운 바지로 갈아입고서는 별 신경도 안 쓰더라. 너무 웃겨서 우리 블로그에 올려놨다”고 회상하며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에 캠프 PD팀에서 지어줬다는 별명도 한 몫 한다. 그의 별명은 ‘비버킴’. 마치 비버와 비슷한 김 후보의 수더분하고 투박한 외모를 친근하게 부르다보니 입에 붙었다는 것.
듬직캠프의 선대위 홍보본부장을 맡은 최민희 의원은 ‘외모만으로는 못 이기는 걸 안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김 후보의 이미지 홍보 전략을 묻는 질문에 “아무리 젊어 보이려 한다 해도 남경필 후보보다 젊어 보이겠으며 아무리 매초롬한 외모를 가꾸려 해도 남경필 후보만 하겠느냐. 사실 못한다”며 “그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지나 보이는 걸로 승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지금 경기도가 필요로 하는 후보는 외모가 젊고 매초롬하고 말을 술술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김진표의 콘텐츠와 경력과 뚝심을 최대한 알리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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