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허풍 따윈 없다…몸으로 쓰는 홈런 역사
자신감보다 겸손함 중요 ‘말보다 결과로’
이승엽 못지않은 홈런 생산능력 ‘새역사 쓰나’
지난해 9월 말 박병호(28·넥센 히어로즈)를 만나 단독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막판 순위 싸움이 치열하던 시기였지만, 이미 박병호의 2년 연속 홈런왕 등극은 확실시 되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박병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미국에는 크리스 데이비스, 일본에는 블라드미르 발렌틴이란 50홈런 타자가 탄생해서 각 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홈런 레이스에 대한 열기가 다소 시들한 것이 사실이다. 팬들은 그 갈증을 해소시켜 줄 가장 강력한 후보로 박병호 당신을 꼽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심 “내년에 도전해보겠다”는 패기 넘치는 답변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박병호의 대답은 조심스러웠다.
“나도 이승엽 선배가 56호 홈런을 치고, 관중석에 잠자리채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그 기록을 위협할 수 있는 선수가 언젠가는 나와서 팬들을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대답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던 기자는 박병호에게 교과서적인 말만 한다고 핀잔을 주면서, 그냥 과감하게 내년에 본인이 한 번 도전해보겠다고 답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고 농담조로 따졌다. 그러자 박병호는 “난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고 웃어 넘겼다.
그리고 올 시즌 박병호는 팀이 치른 56경기에 전부 출장해 27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128경기로 환산하면 61개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승엽이 지난 2003년에 세운 한국 프로야구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56개)은 물론, 발렌틴이 세운 아시아신기록(60개)도 넘볼 만큼 박병호의 방망이는 뜨겁다.
기자가 던졌던 질문에 대해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던 박병호는 올 시즌 자신의 실력과 기록으로 그에 대한 또 다른 답변을 대신하고 있다. 박병호가 말했던 ‘이승엽의 기록을 위협할 수 있는 선수’는 바로 박병호 자신이었고, ‘언젠가’는 먼 훗날이 아닌 바로 올해였다. 하나씩 쌓여가는 박병호의 홈런 숫자를 보면서 마냥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메이저리그 홈런 선두는 61경기에서 21개를 기록 중인 넬슨 크루즈다. 일본에서는 57경기에서 19개의 대포를 쏘아 올린 브래드 엘드레드다. 리그는 다르지만 박병호가 홈런을 쌓아가는 속도는 이들보다 훨씬 빠르다. 지난 시즌에는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한국 프로야구의 홈런 레이스가 올 시즌은 가장 뜨겁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3년 연속 30홈런을 달성한 타자는 이승엽(1997~2003시즌, 7년 연속), 타이론 우즈(1998~2001시즌, 4년 연속), 마해영(2001~2003시즌) 등 3명뿐이다. 박병호가 역대 4번째 달성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3년 연속 100타점을 기록한 타자는 이승엽(1997~1999시즌)이 첫 번째 주인공이었고, 우즈(1998~2001시즌)는 4연 연속 달성해 최장 기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이대호(2009~2011시즌)가 세 번째로 이 영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 올 시즌 현재까지 49타점을 기록 중인 박병호는 이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3년 연속 30홈런-100타점을 달성한 선수는 이승엽과 우즈뿐이다. 50홈런은 이승엽과 심정수만 가능했던 경지였다. 3년 연속 리그 MVP를 수상한 선수는 단 1명, 2001년부터 3년 연속 리그 최고의 선수로 이승엽이 그 주인공이다. 올 시즌 박병호의 홈런 페이스라면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3년 연속 홈런왕은 각 시대별로 한 명씩, 딱 3번 나왔다. 이만수 현 SK 감독은 현역 시절 1983년부터 1985년까지 홈런왕을 독식하며 80년대 최고의 거포로 이름을 날렸다.
90년대 들어서는 장종훈(1990~1992시즌)이 같은 업적을 이루어냈다. 2000년대에는 역시 이승엽(2001~2003시즌)이 그 명맥을 이었다. 박병호가 올해 홈런왕에 오른다면 저들 세 명의 뒤를 이어 3년 연속 홈런왕에 오른 4번째 선수이자 2010년대를 대표하는 거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박병호는 어설픈 공약이나 목표를 내세우는 선수가 아니었다. 지금도 찾아가 50홈런 달성에 대한 포부를 물어보면 조심스런 대답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스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말이 아닌 결과로 보여주는 선수이기에 올 시즌 박병호가 받아들 최종 성적표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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