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인가 반란인가' 해적이 명량을 추월하다니...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입력 2014.08.26 09:09  수정 2014.08.26 09:13

<김헌식의 문화 꼬기>상처입은 대중은 지금 웃음이 필요한 시점

‘해적’ 코믹 포스터. ⓒ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해적'은 빅4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되었다. 드라마 '상어'에서 김남길과 손예진이 호흡을 맞춘 바 있었지만 시청률이 부진했기에 영화 ‘해적’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다. 더구나 영화의 컨셉은 국새를 삼킨 고래를 쫓는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 '군도', '명량', '해무'는 '해적'보다 여러모로 더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군도'는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인 하정우와 강동원이라는 투톱이 있었고, '명량'은 절대적인 전쟁의 신 이순신과 연기의 신 최민식이 있었으며, '해무'에는 김윤석과 문성근 등의 연기파 배우들과 작품성 있는 서사가 주목을 받았다.

영화 '해적'은 갈수록 더 관객들을 더 많이 모으는 이른바 스노 볼(Snow Ball) 효과를 보였다. 입소문이 점점 증가하여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마침내 관객동원에 힘이 떨어진 '명량'을 예상보다 일찍 따돌렸다. 천만관객을 넘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개봉 초기 컴퓨터 그래픽이 떨어진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명량'에서 얻지 못한 점을 영화 '해적'에서 찾고 있는 것일까? 영화 '해적'의 흥행은 영화 '명량'의 흥행과 어느정도 맞물려 있고, 이는 사회적인 요인과도 밀접해 보인다.

우리가 보통 이순신하면 떠올리는 것은 밀려오는 왜군에 맞서 통쾌하게 격파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극적인 스토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명량대첩은 가장 극적으로 왜군을 부순 해전이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통쾌한 액션이었다. 이러한 점은 영화 '명량'은 충분히 담아냈다. 이 때문에 영화 '명량'이 지나치게 이순신의 이미지를 영웅화했다는 비판은 무력해졌다.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은 해전액션이 작렬하는 장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영화 가운데 영화 '명량'은 가장 긴 전투 해상 장면들을 집중 배치해 관객동원에 폭풍같이 성공했다.

그런데 영화 '명량'에는 없는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웃음 포인트였다. 때문에 웃음코드 없이 천만관객을 넘은 유일한 한국영화라는 지적도 있었다. 대개 천만관객을 넘어서기 위해 영화제작자들은 인위적으로라도 웃음 코드를 넣지만, 영화 '명량'은 이와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천만관객흥행을 동원했다. 그것도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썼다. 이후에 한국영화제작은 천만관객을 위해 꼭 웃음코드를 넣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깨지게 되었다.

관객들이 영화 '명량'에서 채우지 못한 웃음 코드는 영화 '해적'이 채워주었다. 사실 빅4가운데 유일하게 웃음 코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큰 경쟁력을 보였다. 군도, 명량도 그렇지만 해무는 더욱 심각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 무더위와 휴가철의 계절에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는 시원하고 유쾌한 영화들이다. 때문에 여름철 흥행영화들은 액션과 웃음, 감동을 함께 담아내려 노력한다. 이번 여름에는 영화 '명량'과 '해적'이 역할분담을 한 셈이 되었다.

비록, 영화 '해적'이 완성도가 떨어질지라도 거의 유일하게 여름 영화의 요인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즉 온 가족이 유쾌하고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없었던 점을 잘 파고 들었던 것이다. 괜히 작품성을 인위적으로 부각하려 했다면 영화 '해적'은 실패했을 것이다. 약간의 페이소스만으로도 충분했다. 여기에 강력한 경쟁작이어야 할 할리우드 영화들은 너무나 보편적인 내용과 형식을 통해 접근했으므로, 한국인들만이 정서적으로 밀착되게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없었던 점을 영화 '해적'이 충족 시켜주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 이후에 이렇다할 한국영화 흥행이 없었던 것은 모두 심각하고 진지한 영화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 자체도 매우 유쾌한 웃음 코드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 이후에 국민들이 웃을만한 계제가 없었다. 더구나 경기는 불황이고 끊임없이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한국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다 보여주었다. 무책임한 사회지도층인사들에 대한 실망감이 팽배한 가운데 영화 '명량'의 흥행으로 이순신 열풍이 불고 이는 리더에 대한 갈증을 있다는 식으로 미디어 매체들이 분석했다. 영화 '해적'의 흥행을 보면 과연 그것만일까 싶다.

영화 '해적'의 돌풍은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웃음으로 참담한 현실을 웃어넘기려는 집단적 저항 의지 같다. 기대할 것은 리더들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자구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능동적인 태도가 담겨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점들이 지금 시점에서는 시사적이다. 더구나 영화의 주인공은 왕의 행동까지도 바꾸지 않는가. 영화 '군도'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구한다고 했지만 왕 한 번 대면하지 못하고 말았다. 영화 '역린'은 정조의 면면을 보여주지만, 그는 왕이었을 뿐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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