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관 1명이 병사 2544명 담당…상담받은 병사 비율 20% 불과
"상담관 확충, 큰 효과 기대하기 어려워…근본적 문제 개선해야"
2010년 여름. 한국말이 서툴렀던 한 이등병이 상담관을 찾아갔다. 미국 영주권자인 이 병사는 미국에 세 살배기 딸과 아내를 둔 서른두 살 늦깎이 군인이었다. 그는 낯선 군 문화와 평소 겪던 공황장애로 힘겹게 군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이 병사는 상담관과 부대의 배려로 정상적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당시 상담관은 정택수 현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었다. 23년간 군생활을 마친 뒤 소령으로 예편한 정 센터장은 군생활 당시 겪었던 부적응 장병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다시 군대로 돌아갔다. 그는 2009년 12월부터 1년 3개월간 화천 최전방 부대에서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으로 일했다.
정 센터장은 지난 2011년 상담관 복무 중 경험을 토대로 저서 ‘이대론 군생활 못하겠어요’를 펴냈다. 그는 책을 통해 생활관 내 왕따와 가혹행위, 성군기 위반 등으로 힘들어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복무기간 중 많은 병사들의 군생활을 정상으로 돌려놨지만, 두 병사를 하늘로 떠나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군대 내 상담관은 병영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병사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군대 내 상담관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을 비롯해 최근 군대 내 가혹행위로 잇달아 발생한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도 부족한 군 상담시설이 지목되고 있다.
정 센터장은 4일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군대 내 상담시설이 많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부대 입장에선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면서도 예산, 인건비 문제가 걸리니까 우선 전방 위주로 상담관들을 배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후방 병사들도 상담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어렵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이어 “내가 복무할 땐 한 사단에 장병이 1만2000명 정도 됐는데 상담관이 2명이었다. 개인당 6000명씩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혼자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그나마 요즘은 4명 정도가 들어가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적어도 대대급에 한명씩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상담관 1명이 병사 2544명 담당…상담받은 병사 비율 20% 불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부대에 배치된 상담관은 모두 250명으로, 육군에 177명, 해군에 39명, 공군에 24명이 각각 배치돼있다. 국방부 직할 근무 상담관은 10명이다. 상담관은 사단급과 여단급 부대에 2~4명씩 근무하고 있다. 연대급 이하 부대나 국방부 직할 부대에는 상담관이 아예 없다.
상담관의 주된 역할은 사단이나 여단 예하 연대, 대대 등을 돌면서 관심병사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또는 부대장이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문제 병사들을 면담하기도 한다. 이밖에 관심병사를 비롯한 군복무 부적응자들의 군대 적응을 돕는 그린캠프, 비전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것도 상담관들의 임무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에 비해 상담관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2012년 말을 기준으로 전체 장병 수가 63만6000여명인 점을 고려하면, 상담관 한명이 담당해야 하는 병사는 무려 2544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상담관으로부터 상담을 받은 장병은 총 12만9000여명으로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한 현직 육군 대위는 “부대에 배치된 상담관은 사단의 경우 2~3명 정도인데, 사단 예하에는 연대도 있고, 대대도 있고, 직할대도 있다. 병력을 다 합하면 야전부대의 경우 1개 사단에 1만명이 넘게 있는데, 2~3명으로 이 인원을 모두 관리하는 것이다. 정말 터무니없는 수준이다”라고 지적했다.
군은 병영부조리 개선대책의 일환으로 2017년까지 상담관을 357명으로 늘려 일반전초(GOP) 부대에도 한명씩 배치한다는 계획이나 이마저도 상담 수요에 비해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담관 확충, 큰 효과 기대하기 어려워…근본적 문제 개선해야"
다만 단순히 군 상담관 수를 늘린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한 육군 소령은 “기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군이라는 조직이 지휘계통으로 이뤄져있고, 크기도 방대하다보니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일상이 돼있는데, 그것도 군대에선 옛날식으로 다 반납하게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근본적으로는 군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요즘 상담관을 늘리겠다는 말이 나오지만 사실 이건 보여주기식이 아닌가,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며 “소통도 무조건 민간만 활용할 게 아니라 군내 내에서라도 지휘관이라든가, 어느 한 구석이라도 말을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역을 앞둔 육군 장교는 “상담관들이 군에 대해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여성 상담관의 경우, 밖에서 상담사 자격증 따와서 상담을 해준다고 하는데, 그들이 이등병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상담관 중 장기간 군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격증만 소지한 민간인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 역시 “상담관은 상담이라는 자신의 영역만 커버하는 것이고, 책임은 결국 지휘관이 진다. 지휘관이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갖고 군대 내 인권문제, 부조리, 병사들의 부적응을 해결하려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지휘관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상담관이 없어도 부대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병영문제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국방옴부즈만 제도를 제시했다. 그는 “상담관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못 한다”며 “내부 상담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외부 감시를 활성화해야 한다. 민간이라고 해도 군이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