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의 동메달, 금메달만큼 가슴 짠한 까닭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입력 2014.09.24 00:34  수정 2014.09.24 11:20

지난 10년간 23차례 한국신기록 갈아치운 수영 영웅

사실상 현역 마지막 대회서 동메달 3개 추가하며 투혼

박태환의 이번 아시안게임은 묘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한국 수영의 영웅 박태환(25·인천시청)이 금메달을 목에 걸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다.

박태환은 23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8초33를 기록, 중국의 쑨양(3분43초23)과 일본의 하기노 고스케(3분44초48)에 이어 3위로 골인했다.

이로써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만 3개를 추가, 역대 아시안게임 16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그의 목에 걸린 메달색이 금색은 아니었지만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은 영웅의 역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박태환은 레이스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힘이 부치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은퇴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태환 본인도, 국민 모두 역시 이번 대회를 끝으로 그의 커리어가 끝날 것을 알고 있다.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수영 영웅의 뒷모습이 더욱 아련해지는 이유다.

박태환의 지나온 선수 생활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4년 아테네 올림픽서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수영 신동은 자유형 400m에서 준비 신호를 출발 신호로 착각하고 입수해 실격 처리됐다. 그렇게 박태환은 국제무대에 첫 선을 보였다.

이후 박태환은 경기를 펼칠 때마다 한국 수영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가 지금까지 써내려간 한국 신기록은 무려 23회. 아시아 신기록 역시 12번이나 경신했다.

메달 개수도 엄청나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은 물론 메이저급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만 13개에 달한다. 은, 동메달까지 포함하면 29차례나 시상대에 섰다.

박태환 인생의 정점은 아무래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2008년이다. 아시아선수로는 최초로 자유형 400m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CF 광고가 줄을 이었고 국가 영웅 대접을 받았다. 여기에 개구쟁이 같은 얼굴마저 크게 어필해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박태환은 1년 뒤 로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최악의 성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본인 역시 이때를 계기로 훈련에만 매진하는 진정한 선수로 거듭났고, 절치부심한 결과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으로 보답받았다.

하지만 박태환도 흐르는 세월을 비켜갈 수 없었다.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의 아시아 신기록(자유형 400m)을 끝으로 박태환의 기록 깨기는 막을 내렸다. 그러면서 중국의 신예 쑨양이 등장하며 ‘최고’라는 자리를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박태환은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실격 후 번복이라는 해프닝을 겪고서도 은메달을 따내는 선전을 펼쳤다. 2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이미 세계 수영계의 스포트라이트는 박태환이 아닌 쑨양에게 맞춰졌다.

급기야 박태환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5년간 후원해오던 기업과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하지만 박태환은 꿈을 멈추지 않았다. 자비를 들여서까지 해외 전지훈련에 나섰고, 보다 못한 일부 연예인들과 인터넷 강사, 그리고 팬들이 동참해 십시일반 힘을 모았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은 박태환이 처음으로 국내팬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메이저급 대회다. 이로 인한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레이스가 치러진 경기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태환수영장이었다.

엄청난 무게로 짓누르던 중압감은 경기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박태환은 감사의 뜻을 보냈다. 그는 400m 예선을 마친 뒤 “결과에 상관없이 많은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올림픽 처녀출전에서 실격을 당했을 때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박태환의 성장과 환희, 그리고 좌절까지 모두 지켜보며 감동과 기쁨을 경험했다. 국민들이 매진사례가 이어지는 박태환수영장에서 박태환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영웅의 마지막 모습에 경의를 표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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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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