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명예’ 구로다· 이치로 선택, 박수 받는 이유
구로다, 거액 마다하고 고향팀과 약속 지켜
이치로, 헐값에도 대기록 도전 선택 ‘투혼’
구로다 히로키(40)와 스즈키 이치로(42)는 투타에서 메이저리그 성공사례로 꼽히는 전설적인 일본인 선수들이다.
둘은 2015시즌을 앞두고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구로다는 지난해 12월 히로시마와 1년 4억 엔에 계약하며 8년 만에 일본으로 금의환향했다. 지난 시즌 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으며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도 숱한 러브콜을 받았음에도 일본 복귀를 택한 것.
불혹에 접어든 나이에도 지난해 뉴욕 양키스에서 32경기 선발 등판해 11승9패 평균자책점 3.17의 준수한 활약을 펼친 덕분이었다. 특히, 샌디에이고는 구로다에게 1년 1800만 달러의 조건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로다는 엄청난 몸값을 마다하고 고향을 선택했다. 구로다는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일본으로 돌아가 히로시마에서 보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구로다는 선수로서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명예롭게 귀환하는 길을 선택했다. 히로시마 팬들과 일본 야구계는 구로다를 '의리남' 으로 칭송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반면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1년 더 선수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이치로는 최근 마이애미 말린스와 1년 2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이치로의 경력이나 전성기 몸값과 비교하면 굴욕에 가까운 계약이다. 그것도 야수진이 두꺼운 마이매이에서 이치로는 백업요원 정도로 분류되고 있다.
이치로의 마이애미행은 메이저리그 3000안타 도전에 대한 의지로 해석된다.
2001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한 이치로는 지난해까지 2844안타를 기록했다. 일본 시절을 포함하면 프로 22년 통산 4122개의 안타를 날렸다.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 기록인 피트 로즈의 4256안타와는 불과 134개 차이에 불과하다. 이치로가 앞으로 156안타를 보태면 대망의 메이저리그 3000안타 클럽에도 가입한다. 꾸준히 출전기회만 얻을 수 있다면 1~2년내 돌파가 가능하다.
사실 이치로가 자존심이나 대우를 의식했다면 굳이 마이애미행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2010년까지 10년 연속 올스타와 골드글러브, 200안타 행진을 벌인 이치로는 데뷔 시즌인 2001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석권했고, 2004년에는 한 시즌 최다인 262안타의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다.
이치로 정도의 경력이라면 지금 당장 은퇴해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지금 일본으로 귀환하더라도 구로다 이상의 최고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치로는 도전을 택했다. 오랜 세월 꾸준한 활약을 펼친 대선수일수록 은퇴가 가까워오면 대기록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구로다와 이치로의 선택은 각기 다른 듯하지만, 돈보다 명예를 택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구로다는 친정팀 및 팬들과의 의리를 선택했고, 이치로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기록에 도전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포기해야했던 부분도 있지만, 그들의 도전정신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한국야구에서도 원조 메이저리거였던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투수 통산 최다승인 124승의 기록을 세우고 일본을 거쳐 한국프로야구에서 고향팀 한화를 통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바 있다. 구로다와 이치로의 길을 모두 거친 사례인 셈이다.
언젠가 추신수나 류현진 같은 한국인 선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 빛나는 전성기를 보낸 뒤 기왕이면 한국야구에서 아름다운 피날레를 장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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