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테러방지법 막는한 또다른 김기종 '활개'
2001년부터 9건 발의 야당 반대로 흐지부지
리퍼트 대사 피습에도 불구 "연관 없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수년간 뒷전에 밀려있던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논의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 입장이 워낙 확고해 실제 법안처리 여부는 미지수다.
현행 테러관련 규정은 지난 1982년 마련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 따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무총리 주재 테러대책회의와 국정원장 주재의 테러대책상임위원회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법률이 아닌 대통령 훈령이라는 점으로 인해 정부부처간 협조나 국가차원의 임무수행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민간분야에 장비나 시설을 의무화할 수 없고, 금융거래 추적 등 예방업무에도 빈틈이 적지 않다. 특히 이번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의 경우 테러행위로 규정할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김기종 씨에게는 외국사절폭행죄 및 폭력행위처벌법상 집단·흉기 상해, 업무방해 등이 적용된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은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리퍼트 대사를 테러한 김기종 씨는 요주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사전에 테러를 예방할 수가 없었고, 결국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테러 취약국’이라는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법 없이 34년 전 제정된 대통령 훈령만으로 테러예방 및 대응활동을 하다보니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사전조사도 불가능해 대한민국이 테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자신이 대표 발의한 ‘국민보호와 국민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의 조속 통과를 촉구했다.
해당 법안은 최근 터키에서 실종됐다 이슬람국가(IS) 조직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군 사건과 IS 조직의 인질 참수를 계기로 지난 2월 16일 이 의원을 비롯해 새누리당 의원 72명의 공동명의로 발의됐다.
해당 법안은 테러의 개념을 국가안보 또는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정부가 국가대테러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 시행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외국정부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살해, 상해, 인질로 잡는 행위 등을 하는 경우도 테러 범규에 포함시켰다.
법안은 또 테러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의 국가대테러대책회의를 대통령 소속으로 끌어올리고, 총리를 의장으로 둬 중앙행정기관의 대테러활동을 총 지휘하도록 했다. 또 국가정보원장 소속으로 테러를 기도할 의심이 있는 자에 대해 정보수집 및 조사를 할 수 있는 태러종합대응센터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OECD 34개국 중 31개국이 수용한 ‘유엔안보리의 테러방지 국제협약’을 준수해 테러방지활동의 사각지대인 외국인 테러전투원 가담자, 테러단체 구성·가입자, 테러 관련 허위신고자에 대한 처벌조항을 신설했다. 새로운 국제테러수법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에 필요한 대책도 세우도록 했다.
이 의원은 다만 야당에서 지적한 ‘과도한 인권 침해’를 감안한 듯 기자들과 만나 “법 조항에 국가는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며 “모든 최종적 제재조치는 경찰과 검찰을 통해 사법판단을 받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인권침해 우려 때문에 법을 만들 수 없다는 야당의 이전 주장은 이번 법안에 관해서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당 지도부도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안의 처리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테러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책이고 대한민국은 테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사전예방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병석)’, ‘국가사이버테러방지법(서상기)’, ‘국가 대테러활동과 피해보전기본법(송영근)’ 등의 법안이 계류 중인 점을 언급한 뒤 “중동의 IS나 프랑스의 샤를리엡도 총격 등 최근 빈번한 테러에 대한 대비와 예방을 위한 입법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며 조속한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이 기회에 나는 분명히 종북세력에 대한 관리를 사법당국이 철저히 해야 하고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한다”며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에 배후를 철저히 가려서 이 세력이 이 땅에 더 존재하지 않는 강한 대처가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시절에도 반대했던 새정치연합, 4월 임시국회 처리 여부는 미지수
하지만 이 같은 여당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안들은 국회 본회의는커녕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소관 상임위인 정보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의 4월 임시국회 처리가 미지수인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에 따르면 테러방지법안은 지난 2001년 11월 정부가 제출한 ‘테러방지법’을 시작으로 17대 국회 3건, 18대 국회 2건, 19대 국회 들어 3건 등 9일 현재까지 모두 9건이 발의됐지만, 이 가운데 19대 국회에서 발의한 3건을 제외한 나머지 6건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새정치연합은 테러행위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테러방지법안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정원의 권한 남용과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새정치연합의 이 같은 주장은 본인들이 여당이었을 때도 예외가 없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3년 11월 19일 정보위 소속 함승희 전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에 참석했다. 불과 5일전 정보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던 테러방지법안의 통과를 위해서였다.
당시 함 의원은 법사위에서 일부 의원들이 반대를 하자 “대통령은 이런 법이 필요하다고 그러는데, 이른바 정신적 여당이라고 하는 의원들이 반대하면 대통령의 정책은 누가 서포트할 수 있는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천정배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가장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특히 대테러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경우 특수부대의 출동을 요청할 수 있는 조항에 대해 “계엄선포 같은 국가적인 위난상황일 때만 군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해당 법안은 제16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이번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새정치연합 지도부 내에서도 대테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어 테러대응법안이 처리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당 소속 정보위원들이 반대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정보위 소속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지금은 국정원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 해당 법안들이 악의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너무 많이 포함돼 있다”며 “일단은 국정원 개혁을 통해서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 부분이 개혁됐다는 의지가 먼저 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어 “현재 해당 법안들이 없더라도 국가기관의 체계가 대테러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별다른 문제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리퍼트 대사의 피습 사건과 이 법안들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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