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덤 아니다…몬트리올 기적 위한 전제조건
사상 첫 월드컵 16강, 우승후보 프랑스와 한판
‘체력 안배-정신무장’ 프랑스 잡은 콜롬비아 주목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사상 첫 월드컵 첫 승과 16강 진출에 이어 8강을 향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 지난 14일(한국시각) 코스타리카와의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막판까지 2-1로 앞서다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동점골을 허용, 조별리그 중간 전적 1무 1패를 기록하면서 16강 진출이 불투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상 16강 진출은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이 흘러나온 것도 사실이다.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인 스페인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18위)에 4계단 위인 14위에 올라있는 팀인 데다, 한국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치른 두 차례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 특히 체력적인 면이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이 먼저 실점하는 장면이 연출되자 ‘역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선제 실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전체적으로 ‘라인’을 내린 상태에서 경기를 운영하다 보니 볼 점유율에서 열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공격적인 면에서도 지소연과 박은선, 전가을 등이 문전에서 골 기회를 만들어내기 직전 상황까지 갔지만 그 빈도는 낮았고 정확성 역시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스페인 선수들의 세밀한 패싱 게임에 측면을 내주는 경우가 빈번했고, 측면으로부터 문전 중앙으로 연결되는 크로스를 너무나 쉽게 많이 허용하면서 스페인에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열어줬다. 이는 선제 실점을 허용하는 빌미가 됐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역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모든 일은 때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첫 승과 16강 진출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보여준 한국 여자축구의 저력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조소현의 동점 골과 김수연의 행운의 ‘슈터링’ 역전 결승골이 터지는 과정도 물론 놀랄 만큼 훌륭했다. 특히, 역전 이후 스페인의 공세를 막아내는 선수들의 투지는 한국 대표팀의 약점인 체력 문제를 상쇄시키고 남음이 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투지가 종료 직전 스페인의 회심의 프리킥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실패하는 선물과도 같은 행운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윤덕여호는 22일 오전 5시 캐나다 몬트리올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프랑스와 8강 진출을 놓고 한판 승부를 펼친다. 프랑스는 한국이 거의 이길 뻔했던 코스타리카(37위)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스페인과는 차원이 다른 팀이다.
FIFA랭킹 3위인 프랑스는 독일(1위), 미국(2위), 일본(4위) 등과 함께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팀으로 한국이 1차전에서 0-2로 패했던 브라질(7위)보다도 랭킹에서 4계단 위에 위치하고 있는 팀이다. 4년 전 독일 대회에서 4강에 올랐던 팀이기도 하다.
스포츠 베팅 업체 ‘래드브록스’가 발표한 각국의 16강 배당률에 따르면 프랑스의 승리 프랑스의 전력은 가공할 만하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프랑스 대표팀은 '역대 최강'을 자부한다.
개인기와 몸싸움 능력, 골 결정력을 두루 겸비한 팀의 에이스로서 A매치 108경기 47골을 기록 중인 유지니 르 솜머(올림피크 리옹)를 위시해 A매치 통산 59골의 마리 로르 델리(파리 생제르망), 그리고 A매치 124경기에서 55골을 기록 중인 게티인 티니(주뷔시) 등 한국 수비진이 경계해야 할 선수가 즐비하다.
유럽예선을 10전 전승(54득점·3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과한 프랑스는 이번 대회 조별예선에서도 잉글랜드(6위)와 멕시코(25위), 콜롬비아(28위)와 함께 F조에 편성돼 조 1위(2승 1패)로 16강에 안착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멕시코를 5-0으로 물리치는 프랑스 대표팀의 면모는 가히 압권이었다.
현재 한국 대표팀 내부 분위기가 아무리 좋다 한들 프랑스 대표팀의 이와 같은 전력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윤덕여호가 스페인에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진출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윤덕여호가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프랑스와의 16강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오른다면 그 승리는 ‘몬트리올의 기적’으로 불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축구라는 스포츠 역시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상대성과 의외성이 존재하고 그런 요소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프랑스도 이번 대회에서 객관적인 전력이라는 기본적인 요소를 뛰어넘는 의외성에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콜롬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 패배가 그것이다.
프랑스는 콜롬비아전 당시 21개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유효슈팅이 6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유효슈팅은 콜롬비아 세풀베다 골키퍼의 신들린 듯한 선방에 막혔다. 그런 반면 콜롬비아의 기습적인 역습에 선제골을 허용하더니 경기 막판 골키퍼의 실책성 플레이로 인해 쐐기골까지 허용하며 0-2로 완패했다.
이날 콜롬비아의 슈팅수는 3개, 유효슈팅은 2개에 불과했다. 콜롬비아의 FIFA 랭킹이 프랑스보다 25계단이나 아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로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패배였다.
윤덕여 감독 역시 이런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윤 감독은 20일 팀 훈련을 마친 뒤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콜롬비아전을 참고할 만하다”며 “지는 경기를 해보지 않은 프랑스는 선제골을 내주자 다급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하면서 실점하지 않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상대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윤덕여 감독의 말대로 대표팀이 먼저 실점하지 않고 안정적인 경기를 운영하는 가운데 승리를 기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체력이다. 전후반 90분 포함 승부차기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또는 체력적인 안배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이 16강까지 오는 과정에서 강철과 같은 체력을 앞세워 수비진을 이끌던 주전 중앙 수비수 황보람(이천대교)이 경고누적으로 프랑스와의 16강전에 결장하는 상황이라면 미드필더진의 수비 지원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체력적인 안배가 필수다.
코스타리카전에서 후반전 막판 극심한 고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나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한 결정적 이유 역시 전반전에서의 오버 페이스로 체력 안배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체력적인 안배에 앞서 더 중요한 요소는 역시 정신적인 무장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남자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자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는 말로 선수들의 계속적인 정신무장을 에둘러 독려했던 점을 떠올려볼 만하다.
프랑스와의 16강전은 결코 ‘덤’이 아니다. 선수들은 계속 승리에 배고파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결핍과 허기가 승리를 향한 투지로 승화됐을 때 객관적인 전력 차이를 뛰어 넘는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몬트리올의 기적을 꿈꾸는 윤덕여호가 충족시켜야 할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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