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황제' 왜 조승우인가…명불허전 '맨오브라만차'
깨달음·용기 안겨주는 돈키호테 이야기
명작에 명품연기 일품..11월 1일까지 공연
"이 세상은 똥구덩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꿈틀대는 구더기일 뿐이야."
야속하고 척박하기만 한 세상에 지친 알돈자의 외침이 관객들의 가슴을 때린다. 꿈을 잃고 세상에 고분고분하게 순종하고 있는 모습, 이는 관객 모두가 원죄처럼 품고 살아가는 처절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현실과의 타협을 즉각 멈추라고 이야기한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세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자칫 무모하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관객들은 자신의 이야기인양 공감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꿈과 이상을 향한 여정에 동참한다.
비록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의 기사'에 의해 처참한 현실과 마주쳐 좌절할지라도, 그 여행이 허무맹랑할지라도, 결코 헛된 여정은 아니다. 꿈을 향한 경주를 멈추지 않는 이상, 돈키호테는 영원히 가슴 속에 살아 있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높은 장벽에도 아랑곳없이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하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우리가 쉽게 포기하고 쉽게 버리려 했던 진짜 삶의 가치, 이상과 꿈을 되살려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명배우들의 명연기를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10주년을 맞이한 이번 무대에는 '맨오브라만차' 역대 최고 캐스팅으로 손꼽히는 조승우와 류정한이 나란히 무대에 선다. 화려한 영상이나 무대 장치 없이 오직 스토리와 음악의 힘만으로 3시간을 가득 채우지만, 지루할 틈을 느낄 수 없는 건 역시 배우들의 힘이다.
'뮤지컬 황제' 조승우의 활약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굳이 성량이나 가창력을 따진다면 조승우보다 더 뛰어난 배우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조승우의 연기력과 감정 조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혼을 실어 관객들 구석구석에 전달하는 그의 연기를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난다.
그만큼 조승우는 누구보다 더 자유롭게 무대를 누빈다. 관객들과 밀당을 즐기는 그의 연기를 지켜보는 일은 뮤지컬을 보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조승우는 이 작품으로 2008년 더 뮤지컬 어워즈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역대 최다 시즌 출연(5회)에 빛나는 류정한도 3년 만에 돌아와 한층 깊어진 연기를 선보인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다운 풍부한 성량과 음악적 해석은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 올린다. 이 작품의 대표적인 명곡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을 류정한만큼 임팩트 있게 부르는 배우는 드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고 했던가. 새로운 알돈자 전미도와 린아가 이번 작품으로 '제2의 김선영'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반면, 서영주(도지스/여관 주인 역)의 빈자리는 유독 컸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가려운 곳을 긁어줬던 서영주식 웃음 포인트가 사라진 건 못내 아쉽다. 앞으로 이 작품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한편, '맨오브라만차'는 스페인의 작가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Miguel de Cevantes)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했다. 신성 모독죄로 감옥으로 끌려온 세르반테스가 그곳에서 만난 죄수들과 함께 즉흥극을 하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좋은 작품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살아갈 용기와 깨달음을 준다. '맨오브라만차'는 그런 점에서 죽기 전에 한 번쯤 꼭 봐야할 작품이다. 특히 귓가에 맴도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공연장을 빠져나온 후에도 오랜 시간 여운을 남긴다.
조승우와 류정한을 비롯해 전미도, 린아, 김호영, 정상훈 등 뮤지컬계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이 출연한다. 11월 1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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