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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위 비공개 내용 SNS에 먼저? 정치인 제정신인지


입력 2015.10.21 10:04 수정 2015.10.21 10:16        하윤아 기자

<기자수첩>박지원, 국감 내용 일부 SNS 올려…비공개 정보 누설 논란 야기

20일 국가정보원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일 국정원에서 진행된 국회 정보위원회의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일부 내용을 자신의 SNS에 올려 정보 누설과 관련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반경 정보위 여야 간사의 공동 브리핑에 앞서 '국정원 댓글사건 관련 네티즌 좌익효수 국정원 직원 여부', '김정은 뒷목 혹', '황장엽 관련 김덕홍 발언', '김경희 건강 상태', '북한 열병식과 신무기 평가' 등에 대한 국정원의 답변 내용을 옮겨 적었다.

정보위 회의는 법률(국회법 제54조의2)에 따라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보위 국정감사도 비공개로 진행된다. 때문에 여야 정보위 간사들은 국감이 진행되는 도중 혹은 국감이 모두 마무리된 후 취재진이 위치한 별도 브리핑 장소에 들러 회의 내용이나 국감에서의 국정원 답변 내용을 간략히 설명한다.

그러나 이날 박 의원은 여야 간사의 공동 브리핑이 있기 약 1시간 반쯤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정보에 해당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고, 이로 인해 국정원 측은 물론 취재진도 큰 혼란에 빠졌다. 박 의원의 페이스북 글이 실제 국감에서 거론된 내용인지, 국정원의 답변이 박 의원이 밝힌 내용과 들어맞는 것인지 등에 대해 명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취재진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이 이어지자 국정원 관계자는 급히 브리핑을 갖고 "원래 정보위 국감은 비공개고 브리핑은 여야 간사가 하도록 돼 있다"며 "박 의원의 페이스북 내용은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정보위는 비공개라서 (글을) 올리면 안 되는데 올려서"라며 예상치 못한 돌방상황에 난감하다는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후 4시경 여야 간사는 국감 진행 도중에 국감장을 빠져나와 취재진들이 머물고 있던 브리핑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나다를까 이때 야당 간사인 신경민 새정치연합 의원은 박 의원의 선 공개 내용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을 붙여 설명했다. 물론 그 외 여러 중요 정보들도 함께 공개됐지만, 핵심 정보 몇몇은 이미 박 의원이 페이스북으로 밝힌 터였다.

특히 신 의원은 "박 의원이 아마 본인 페이스북에 올린 모양인데, 본인이 물어본 것에 대해 답변이 기밀과 상관 없다고 해서 올린 것 같다"고 에둘러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법률상 비공개 내용을 외부에 밝힐 수 없어 여야 간 합의에 따라 간사들이 공동으로 국감 내용을 브리핑하기로 했음에도, 불과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전에 미리 정보를 공개한 것은 의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활동하는 온라인상에 퍼뜨린 점은 정보위 소속 의원으로서 그 자질을 의심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비공개 내용을 아무 거리낌없이 공개할 수 있다면 도대체 비공개 국감은 왜 필요한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여야 간사에게 정보를 미리 공개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그새 법률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앞서 지난 7월 국정원은 내국인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사찰 의혹과 관련해 야당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정보위 비공개회의에서 이탈리아의 해킹 프로그램으로 200여차례 해킹을 시도, 북한의 불법 무기 거래를 포착한 사실을 밝혔다. 이 같은 해킹 성과는 안보적으로 상당한 민감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국정원은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기밀사항을 여야 의원들에 공개키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해당 기밀사항은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됐음에도 며칠 뒤 일부 여당 관계자의 브리핑으로 내용이 보도되면서 기밀 누설과 관련해 한차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야당은 "이런 행태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와 유사한 행태가 또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국회법 제54조의2(정보위원회에 대한 특례) 2항에는 '정보위원회의 위원 및 소속공무원은 직무수행상 알게 된 국가기밀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명시돼있다. 정보위 회의는 물론 국감도 비공개로 진행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국가의 일급 기밀사항이자 국가안보와 직결된 상당한 수준의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 정보의 경중은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정보라도 그것이 향후 우리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어지러운 국제정세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비공개 정보를 부주의하게 흘려보내는 여야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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