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궐기에 '병신년' 피켓...폭력 줄었지만 폭언은 극렬
'병신년 박근혜' 문화제한다며 혐오스런 구호들
부상 농민 위한다며 구호는 '기-승-전-정권 퇴진'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중총궐기 3차 대회가 열렸다. 예전과 달리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결국 주요 구호는 '박근혜 퇴진'이었다.
지난달 민중총궐기 1차 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씨(69))의 쾌유 기원과 노동개악(노동개혁)저지를 내걸고 열린 이날 대회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전국노점상총연합회(전노련),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시민사회 단체와 대학생 등 시민 8000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은 2500명)이 모였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경찰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한 것에 반발한다는 의미로 '소(란스럽고)요(란한) 문화제'로 개최했다. 그러나 경찰은 69개 중대 5400여명을 광화문광장 인근 등에 배치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된 대회에 참가자들은 손짝짝이(박수 소리가 나는 도구)와 부부젤라, 호루라기, 탬버린 등을 들고 나와 소란스럽고 요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부는 스테인리스 그릇과 숟가락 등 가재도구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순수한 문화제 형식을 띠었을 뿐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결국 '박근혜 퇴진' 등 반정부 구호였다.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박근혜는 물러가라', '공안탄압 중단하라', '박근혜 3년 헬조선', '병신년(2016년) 박근혜'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농 소속 한 농민은 단상에 올라 "우리 해고 당하지만 말고 박근혜 권력을 해고시키자. 파멸시키자. 아예 지구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자. 지구에서 떠나가라. 이 더러운 X들"이라고 원색적인 발언을 했다.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도 단상에 올랐다. '창현 아빠' 이남석 씨는 "얼마 전 열린 세월호 청문회에서 증인들은 거짓과 은폐만 일삼았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아이들이 어리고 철이 없어서 대피하라는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떠들었다"며 "박근혜 정권은 우리에게 목숨 값 몇 푼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감옥으로 끌려가야 독재의 질주가 멈추나. 이제 믿을 것은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 모인 국민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행사장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배재정·홍종학·장하나·진성준(무순) 의원이 모습을 비췄고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도 볼 수 있었다.
오후 4시 30분이 되자 투쟁본부는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청계광장, 종각역, 종로5가역을 거쳐 서울대병원 후문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행진에서도 정권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다. 행진대는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무릎 꿇고 사죄하라', '경찰청장 파면하라'고 소리쳤다. 가두 행진의 선두 행렬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도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가두 행진 과정에서 행진대를 이끈 민주노총 관계자는 연신 "박근혜가 물러나야 한다"고 소리쳤다. 단순히 현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반정부투쟁으로 비춰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일부 시민은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 중년 남성은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나라 말아먹겠다. 이 놈들아"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한 남성 노인은 다른 노인을 향해 "너 같은 XX 때문에 민주화가 안 되는 거야"라며 삿대질과 고성을 하기도 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종로 인근을 걷던 한 여성은 "아유 시끄러"라며 불쾌함을 표했다.
결국 경찰은 이날 행사에 대해 '순수한 문화제'가 아니라 집회·시위로 변질됐다고 판단하고, 주최 측 집행부에 대한 처벌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예전과는 달리 축제 분위기 속 진행된 행사
행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부 잡음이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이 날은 큰 소동 없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간 시위·집회는 공격적이고 살벌한 분위기로 흘러갔지만 이 날은 달랐다. 참가자들은 신명나는 노래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등 전체적으로 축제의 느낌으로 흘러갔다.
일부 참가자는 오랑우탄 가면을 쓰고 호루라기를 불며 대회를 이끌었고 빨간색 마녀 모자를 쓴 참가자도 포착됐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지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이는 반짝이로 밀짚모자를 꾸민 참가자도 있었으며 고양이 모양을 한 복면을 쓰 중년 여성도 존재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띈 참가자는 붉은 색과 색동 무늬가 섞인 한복을 입고 온 4명의 여대생이었다. 이들은 흥겨운 민중가요에 맞춰 길거리에서 춤을 추며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특이한 모양의 복장을 한 사람들을 향해 길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신기한 듯한 눈초리로 바라봤고 사진 촬영을 하기 바빴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시위 문화가 특이한 듯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이화사거리에서 4명의 중년 남성은 이들을 향해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맞이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에는 새로운 느낌의 민중가요도 한 몫 했다.
기존 민중가요의 이미지가 다소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였다면 이번에 들려진 곡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한 박자와 리듬으로 사람들의 몸을 움직였다. 트로트와 같이 친근한 멜로디로 참가자 뿐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의 귀마저 사로잡았다. 이 중엔 캐롤송을 개사한 민중가요도 있었고 변진섭의 '희망사항'을 개사한 곡도 있었다. 곡들의 가사는 '박근혜 싫어', '근혜는 아니다', '세상을 바꾸자', '난 그런 여자가 싫더라' 등 대부분 직설적인 형태였지만 가사보다 멜로디가 귀에 박히며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한 시민은 가두 행진단을 보며 "폭력적인 시위 대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등 축제 분위기로 대회가 진행돼 신선한 것 같다"고 호응했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참가자들과 경찰의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14일 1차 대회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로 여론의 질타를 맞은 것을 의식한 듯 가급적 충돌을 자제하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일부 참가자들은 다소 과격한 행동으로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가두 행진이 시작되고 광화문 광장에서 청계 광장으로 참가자들이 대거 이동하는 과정에서 횡단보도가 빨간불로 바뀌며 이동의 흐름이 끊기는 일이 발생했다. 통행 차량의 흐름을 위한 것이었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려 했고 경찰이 이를 막으며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참가자는 "깡패 경찰아. 왜 우리 가는 길을 막느냐"며 막무가대로 경찰을 밀쳐내려 했고 경찰은 "차가 지나가잖아요"라며 끝까지 막아섰다. 계속되는 일부 참가자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듯 했으나 경찰이 맞대응하지 않으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 집회 연 보수단체 진보 향해 "우리도 춥다. 집회하려면 따뜻한 봄에 해라"
한편 이 날은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대회에 반대하는 보수단체의 반대집회도 이어졌다. 같은 시각 광화문 광장 맞은편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대한민국재향경우회의 주도로 '국회의 오만과 불법파업 등 규탄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주최측 추산 5000여 명(경찰 추산 1500명)이 모였다.
구재태 경우회 중앙회장은 대회사에서 "길 건너편 광화문에서 민주노총 주도로 3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이어지고 있다. 저 사람들은 폭력 시위로 온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폭력 집단"이라며 "종북세력을 비호하는 그런 불순한 성향의 단체이다. 우리의 강한 뜨거운 열정으로 저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자"고 주장했다.
황장수 미래연구소 소장은 "재작년 이 맘 땐 진보세력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쳐 여기 있는 분들이 고생했고 작년엔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고생했다"며 "올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로 데모를 하더니 노동개혁에 반대해 폭력시위를 하고 있다. 앞으로 따뜻한 봄날에 집회를 해달라고 하고 싶다. 해마다 엄동설한에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고 외쳤다.
황 소장은 "미국 포드사의 노동자 1년 연금은 7500만원이며 일본의 도요타사의 연봉은 8300만원"이라며 "현대자동차의 연봉은 1억이다. 저기 있는 노동자의 대부분이 상위 10%의 연봉을 받는 귀족 노동자이다. 저들이 1800만 중소기업인을 대변한다고 하고 730만명의 비정규직을 대변한다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도 "길 건너 불법 집회를 열고 있는 저 자들을 모두 구속시켜야 한다. 불법 집회야말로 대한민국을 좀 먹는 것이고 한국 경제를 망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우회는 "국회가 정쟁과 내년 총선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경제활성화법, 노동개혁법, 테러방지법 등 화급한 법안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오후 2시경 서울역 광장에서 회원 5000여명(경찰 추산 2500명)을 동원해 '국가혼란 획책하는 반정부세력 2차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의 파업은 정치적 목적 위한 불법정치 파업"이라며 "정부는 이번 총파업을 명백한 정치 파업이자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해야한다 (경찰은) 민주노총을 즉각 해체하고 한상균 위원장에게 중형을 선고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내년 총선에만 혈안이 된 국회의원들을 강력히 규탄하며 노동개혁법, 경제활성화법, 테러방지법 등 민생·경제 관련 법안을 연내에 통과시켜야 한다"면서 "한국사 교과서 편찬기준을 정확히 마련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마무리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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