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주도 성과주의 추진에 은행도 '시늉'만
KEB하나, 농협, 신한 '우회전략'…노조 반발 여전해
금융당국이 ‘성과주의 도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 확대나 개인 평가 시스템 도입 등은 노조와 협의가 필요한 휘발성 높은 사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당국 주도의 정책추진에 내부 반발도 작지 않다.
금융당국주도 성과주의 반발만 키워
금융노조는 금융당국 주도의 성과주의 추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의 ‘시범 도입’ 대상인 기업은행의 경우 사활을 건 투쟁모드에 돌입했다. 금융노조는 과도한 경쟁이 은행의 건전성 악화와 불완전 판매를 초래할 수 있다며 ‘파업카드’를 비롯한 전면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내에선 당국의 ‘팔 비틀기식’ 정책추진으로는 노조와의 간극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성과주의 추진의 주어가 ‘금융회사’가 돼야 파열음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금융권 성과주의의 불씨를 당긴 것은 정부였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 안 하는 사람이 많다”며 은행권의 임금체계를 지적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발언 이후 금융개혁의 전선이 규제개혁에서 성과주의로 급선회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에 성과주의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며 공론화에 나섰고, 여당도 가세해 금융권 성과주의를 압박했다.
은행 내부서도 반발…"'시늉'만 하는 상황 올 것"
은행맨들의 반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부는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금융회사 연봉 문제를 정부가 관여할 일인가”라며 반기를 들었고, “정부주도의 성과주의 추진은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노조의 반발에 민감한 은행 경영진이 성과주의 ‘시늉’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당국이 미는 이슈에는 일단 ‘액션’으로 답하는 게 정례화 됐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이번 사안은 4월 총선을 앞두고 ‘금융권 표심’과 정치논리로 얽혀 있다. 금융노조가 총선 투쟁을 전개할 경우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최근 금융노조가 ‘투쟁’ 강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금융노조는 성과주의 추진을 “국민의 월급에 손을 대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전면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KEB하나은행-농협은행 파격인사…'우회전략' 통하느냐 시험대
금융권은 최근 KEB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의 ‘성과주의 인사’와 신한은행의 ‘임금피크제 면제’ 도입을 주목하고 있다. 당장 급여체계에 손을 데는 것은 노조의 반대로 현실화하기 어려운 만큼 인사혜택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과주의 확산하고 반발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우선 KEB하나은행은 지난 16일 성과가 우수한 행원급 직원 6명을 특별 승진시켰다. 5명의 행원이 과장으로 승진했고, 이 중에는 12년간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 4개월 만에 대리로 승진한 행원도 있었다. 함영주 행장은 이들에게 ‘마케팅 영웅’이란 호칭도 부여했다.
NH농협은행도 성과가 우수한 직원을 승진연한에 관계없이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택했다. 팀장에서 부장이 되기까지 통상 10년이 걸리지만 성과가 우수한 직원은 이 기간이 단축되는 것이다. 지난 4일 취임한 이경섭 NH농협은행장은 “성과주의 확산을 위해 능력 있고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이 보상받는 조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노조 설득여부에 달려…평가시스템 도입 등 조율해야"
신한은행도 올해 첫 도입된 차등형 임금피크제 대상자 중 성과와 역량을 인정받은 직원들에게 임금피크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즉, ‘성과가 좋으면 임금피크제도 비껴간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성과가 우수한 직원에게는 나이나 학력, 출신, 성별 등 어떠한 조건과 관계없이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성과에는 보상이라는 이번 제도의 취지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결국 노조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린 일”이라며 “열심히 일한 직원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고, 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시스템 도입 등 세부적인 사안을 차근차근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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