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외전' 강동원 영화인데 천만 넘는게 문제?
<김헌식의 문화 꼬기>강동원 신드롬과 스크린 독과점 그리고 내부자들
영화 '검사 외전'이 천만 관객 영화로 등극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한마디로 어떻게 이런 영화가 천만 영화에 이를 수 있느냐는 감정 때문이겠다. '청불'(청소년불가) 영화의 신기록을 기록한 ‘내부자들’과 이런 점에서는 같다. 더 확대해보면, 천만 돌파 영화가 언제는 심오한 무엇인가가 있었는지도 생각해보면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는 듯싶다.
영화 ‘검사외전’에서 차장검사가 자신의 직속 후배 검사를 피의자 살인죄로 감옥에 보낸다. 아마도 검사들이 봤으면 실소를 했을 법하다. 실소를 감추지 못할 장면은 또 있었다. 주인공(강동원)은 서울대 동창회도 모자라 실명을 운운하며 검사를 상대로 가짜 검사 사기를 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원고지로 쓴 사설 한편으로 대학민국 정재계를 들었다놨다 하는 논설위원의 파워게임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뿐이다. 한사람의 힘이 아니라 거대 언론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간과되기 때문이다. 종편을 비롯한 수많은 매체와 포털 시스템이 포진한 상태에서 종이신문의 위기를 생각한다면 시대적 감각이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들은 흥행을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스크린 독과점이 문제가 되었다. 온통 영화 ‘검사외전’이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의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천만관객을 돌파하지 않으면 이상한 노릇이다. 영화 검사외전이 그렇게 전국민이 매달려 볼만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것을 보고 있다.
초기에는 빤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관객동원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못하게 했다. 흥행 실패를 점친 것이다. 그러나 흥행몰이에 나섰다. 스크린 지배력 때문이라 결론을 쉽게 내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크린지배가 가능했던 것은 경쟁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박을 바라고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이 줄줄이 쓰러졌기 때문에 사실상 지난 연말부터 볼 영화가 없었다. 그러한 점은 영화 ‘히말라야’의 독주를 낳았다.
‘국제시장’, ‘베테랑’, ‘히말라야’ 에 이어 ‘검사외전’에 등장한 황정민의 티켓파워도 있지만 ‘검은 사제들’에서 보인 강동원의 파워는 역시 ‘검사외전’에서도 여실히 이어졌다. 낯설고 둔중한 스토리를 담은 ‘검은사제들’마저 흥행을 일으켰던 맥락에서 검사외전까지 봐야할 영화로 만든 것은 강동원이 갖고 있는 가치 때문이다. 그의 가치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소진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소진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배우들이야 자신들의 이미지 소진을 생각하지 않고 기획사의 플랜에 맞춰서 작품에 임할 수밖에 없는 것과는 다르다.
영화 ‘베테랑’에서 ‘내부자들’ 그리고 ‘검사외전’에 이르기까지 관통하는 코드는 힘 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다. 화풀이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영화관이 채워주고 있다. 기득권, 부자, 권력에 있는 이들을 두들기는 영화가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화 검사외전은 밀어줌의 대상으로 낙점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주연배우 강동원은 극중의 인물과 같은 계층적 배경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이런 영화들에서 두들기는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점이 강동원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 가운데 왕자에 속하는 포지션 때문에 스타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으로 좌절과 분노감에 상류층들을 두들기지만 그것은 그들에 대한 선망 아니 욕망에 기반하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의 기저에는 금수저가 되고 싶은 욕망의 좌절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한 가지 심리를 보고 넘어가자. 심리학자 제프리 해덕(Geoffrey Haddock)의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토니 블레어(Tony Blair)의 결점을 두 가지 또는 다섯 가지를 뽑으라고 했다. 두 가지를 뽑는 사람들보다 다섯 가지를 뽑는 이들일수록 그가 그렇게까지 결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점을 찾아내기 어려워지면서 그가 오히려 좋은 장점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어 매력도가 증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를 겨냥하여 두들기고 싶은 경우, 그 대상이 되는 이들의 나쁜 점을 헤아리다보면 그렇게 많이 나쁘지 않다는 것에 스스로 설득 당한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돈 있고 권력 있는 이들의 악독함을 찾아내고 그것을 부각시켜 대중적 호응을 받으려한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그 악인들을 사랑하게 된다. 알 수 없이 악인들의 나쁜 점을 들추려 하지 말라 그들이 사랑스러워지고 그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진다. 그러니 스크린 독과점을 통해 돈을 벌면 어떠랴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이런 둔감함도 증대하겠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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