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귀순' 탈북자가족 서울 보내겠다는 북, 노림수
가족 동원해 선전하는 수법으로 탈북자들 위축시켜…"비인간적" 비판
북한이 이례적으로 해외식당에서 근무하다 국내로 들어온 북한 종업원 13명의 가족들을 직접 서울로 내보내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러한 북한의 의도와 관련, '국내로 입국한 탈북자들을 위축시키고 동요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1~2년간 북한은 탈북자들의 가족들을 동원해 선전에 이용하는 수법으로 국내 탈북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데, 이번 사례도 그 일환에서 북한에 남아있는 탈북자 가족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는 설명이다.
북한은 앞서 21일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 종업원 13명의 가족들을 판문점이나 서울로 보내 직접 대면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22일 조선중앙통신은 리충복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북한 종업원들의 가족들을 서울로 보내겠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대한적십자사 측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13명의 종업원들이 귀순한 지 5일 만인 지난 12일 '전대미문의 집단적 유인납치'라는 첫 공식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후 연일 이번 집단탈북 사례를 '납치'라고 주장하면서 탈북자 13명에 대한 송환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들 탈북자들의 가족들을 내세워 대면을 요구하거나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보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이광백 국민통일방송 대표는 본보에 "최근 1~2년 동안 북한 당국이 지속적으로 하는 작업이 있는데, 한국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통해 탈북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라며 "그 패턴을 보면 꼭 가족들을 동원해 '다시 돌아와도 받아주겠다'는 식의 비인간적인 회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 집단탈북 사례에서도 가족들을 동원해 공세를 펼치고 있는 데 대해 이 대표는 "일종의 여론전으로 한국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차원도 있고, 가족과의 관계를 자극함으로써 탈북민들의 인간적인 고뇌, 고민을 건드리고 (탈북을) 후회하게 만들거나 동요하게 만들어 위축시키려는 측면도 있다"고 그 의도를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행위는 대단히 비인간적"이라며 "본인의 의지대로라면 탈북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일 텐데, 북한이 가족을 내세워 공개적으로 압박한다면 탈북을 선택한 사람들은 정말 힘겨운 고통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북한 전문가들은 탈북자들의 가족들을 한국에 보내겠다는 북한의 의도와 관련, '주민 단속의 필요성 차원에서 자신들의 납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을 내놨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집단탈출이라는 것이 북한에서는 굉장히 큰 사건이라 내부적으로 다 알려졌을 것"이라면서 "때문에 일단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납치)이 정당하다는 점을 어떤 식으로든 증명해 주민들에 대한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박영호 강원대 초빙교수도 "북한으로서는 주민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김정은 체제의 틈새를 벌이는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동요가 될 수 있는 계기를 사전에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납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공세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교수는 "가족들을 서울로 보내 대면시키겠다는 요구를 우리 측이 거부하면 북한은 또 이것을 가지고 '남측이 납치해갔다는 방증'이라고 이야기하며 대내, 대외적으로 선전을 벌일 수 있어 더욱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보낸 통지문에서 "귀측 국정원깡패들은 중국현지의 거간꾼들과 공모하여 백주에 우리 공민들을 가장 비열하고 야만적인 수법으로 귀측지역으로 납치해갔다"며 "귀측 당국이 집단탈북이니, 자유의사니 뭐니 하면서 우리 공민들을 강제로 억류시켜놓고 그들을 송환할 데 대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마저 전면부정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이며 숭고한 인도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사랑하는 자식들과 생이별당한 우리 가족들은 자기 자식들과 직접 대면시켜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며 "귀측은 국제관례니 뭐니 하는 부당한 구실 밑에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은폐하려할 것이 아니라 적십자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측 가족들이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나가 자식들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필요한 실무적 조치를 즉각 취하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앞서 우리 정부는 "이번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의 집단 귀순은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라며 "북한이 가족 대면을 요구한 것은 본인들의 희망과 자유의사, 그리고 인도적 사안에 대한 국제적 관례를 고려할 때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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