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 "연기와 예능, 넘나들고 싶다"

부수정 기자

입력 2016.09.02 09:14  수정 2016.09.08 10:04

강우석 감독 20번째 작품서 고산자 김정호 역

"실존 인물 연기 어려워, 역사 왜곡 옳지 않아"

배우 차승원은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 선생으로 분해 열연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아요. 끊임 없는 고민과 갈등 속에 김정호 선생을 연기했습니다."

'삼시세끼'로 대중에게 친숙한 '차줌마' 차승원(46)이 본업에 돌아왔다. 강우석 감독의 첫 사극이자 스무 번째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고산자)를 통해서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고산자'는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권력과 운명, 시대에 맞선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를 담아냈다.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김정호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에서 차승원은 준수한 연기력으로 김정호를 연기했다. 다소 심심한 이야기인데도 묵직한 감동을 느끼는 건 차승원의 호역 덕이다.

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차승원은 김정호에 대해 "일상생활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지도에 미쳤던 분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영화는 '지도꾼'이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김정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지도에 대한 집념, 딸에 대한 부성애 등은 관객들의 가슴을 건드린다.

차승원 주연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권력과 운명, 시대에 맞선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를 담아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언론 시사회 당시 강 감독은 "각박하고 팍팍한 삶에서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힘이 돼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김정호의 이야기를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라고 연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차승원도 강 감독의 의도에 동의했다. "김정호를 참 외로운 분이라고 해석했어요. 외로운 사람이 지도를 그린 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이 지점이죠. 주변을 돌아보자는 것. 기록이 없으니까 그분의 사상이나 신념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지도에 집착한 이유는 '베풀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차승원은 "사건, 사고도 잦고 삭막한 사회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가치관을 믿는다"며 "'나만 잘 되고 다른 사람은 안 됐으면 한다'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이 잘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정호는 손수 목판을 깎아 판화처럼 지도를 제작했다. 더 많이 보급하고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목판으로 제작한 건 정말 위대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보급해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한 거잖아요. 애민사상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지도에 미친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사극은 '혈의 누'(2005),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화정'(2015)에 이어 네 번째. 김정호는 기록이 거의 없는 인물이라 연기하기 힘들었을 터. 차승원은 "접근하기 힘들긴 했는데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김정호 주변 인물이 평범하게 묘사돼 김정호를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배우 차승원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통해 강우석 감독과 첫 사극 호흡을 맞췄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그는 김정호를 평범한 아버지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줬다고 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을 너무 무겁게만 그리면 극 자체가 어두워진다는 판단에서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평범한 아버지이자 사람' 김정호에 끌려서다. 거창한 메시지를 주려고 작품을 택한 건 아니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작품은 김정호의 발자취보다는 인간 김정호를 보여주는 데 애를 썼다. 차승원은 "영화가 의도한 부분"이라며 "김정호의 여정은 지도를 확인하는 답사의 의미"라며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 차 한 번이라도 가보지 않았겠냐'는 상상에서 여정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길 위에 선 김정호는 힘차게, 인간적인 면에선 헐렁한 인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며 "의상을 입고 촬영장에 가면 자연스러운 말투, 행동, 걸음걸이가 나왔다"고 전했다.

딸과 목판을 두고 갈등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딜레마였단다. "지도꾼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인데 딸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나왔잖아요. 딸을 살리기 위해선 목판을 빨리 포기해야 했는데 망설인 거죠. 저였으면 자식이 먼저죠."

배우가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낀다. 역사 왜곡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자칫하면 잘못된 역사를 시청자들에게 주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정확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역사물을 보면 '저 위인은 저렇다'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생기잖아요. 위인을 연기한 배우가 다른 작품에 나오면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을 하기 힘들어요. 청소년들은 작품에 나온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요. '고산자'는 두줄 밖에 없는 기록을 남긴 김정호에 상상력을 입힌 작품인데, 기록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를 만드는 건 반대했습니다. 무모하고요. 고민하고, 또 갈등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출연한 차승원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배우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부연설명했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살을 붙이는 작업인데, 사실과 상상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에 잘못된 살을 붙여서 재창조하는 건 안 됩니다. 재미를 위해서든,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든. 역사왜곡은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지요."

강 감독과는 첫 사극 호흡이다. 그는 "감독님이 죽겠다고 하셨다.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하셨다. 이렇게 오랫동안 찍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강 감독이 강조한 부분은 '김정호의 삶을 정직하게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단다. "올곧게 가는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앞으로 '쭉' 가는 이야기라 어떻게 보면 투박하고, 만듦새도 잘 모르겠지만 어렵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체 관람가잖아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와!' 하고 감탄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대한민국 팔도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게 '고산자'의 미덕이다. 제작진은 마라도부터 합천 황매산, 강원도 양양, 여수 여자만, 최북단 백두산까지 총 9개월간 106.240km에 달하는 거리를 두 발로 디디며 사계절을 담았다.

오프닝 7~8분 동안 보여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풍광은 압권. 특히 백두산 절경은 마치 CG처럼 보일 정도로 환상적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 차승원은 "백두산이 제일 좋고, 기억에 남는다"며 "일 년에 몇 안 되는,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찍어서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떠올렸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출연한 차승원은 "실존 인물에 접근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며 "고민과 갈등 속에 촬영했다"고 털어놨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동'이었단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장장 1년 동안 찍으면서 연기 템포를 유지하는 것도 고충이었단다.

애드리브는 없었다. 호불호가 갈릴 강 감독 특유의 '아재 개그'에 대해선 "모르겠다. 사실 나도 처음에 갸우뚱했다. 감독님도 주변 분들의 반응을 듣고 넣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1988년 모델라인 18기로 데뷔한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2001), '선생 김봉두'(2003), '혈의 누'(2005), '이장과 군수(2007), , '최고의 사랑'(2011),'하이힐'(2014), '너희들은 포위됐다'(2014), '화정'(2015)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다양한 색깔을 냈다.

최근 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마냥 멋있을 것만 같고, 다가가기 힘들 듯한 그는 의외의 요리 실력과 수수한 옷차림, 털털한 매력으로 '차줌마'(차승원+아줌마)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차승원은 "예능은 편한 마음으로 출연했다"며 "어떤 성과를 내려고 출연한 게 아니라, 그냥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배우 차승원이 연기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큰 성적을 내려고 욕심내서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내려놓고 '그냥' 한단다. 이번 '고산자' 김정호도 그랬다. "뚜렷한 목표를 정해놨는데 거기까지 못 가면 실망하잖아요. 무엇을 바라는 게 아닌, 편한 마음으로 연기하려고 해요. 그래야 과정이 즐겁거든요. 그렇다고 설렁설렁하진 않습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출연한 차승원은 김정호에 대해 "지도에 미친 분"이라며 "지도에 대한 집념이 위대하다"고 전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예능인 차승원과 배우 차승원을 왔다 갔다 하는 비결이 궁금해졌다. "예능과 영화를 이어주는 스위치가 있다면 켰다, 껐다 하고 싶어요. 근사한 예술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예능을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예능만 하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두 분야를 넘나들고 싶어요. 그렇다고 양다리는 아니에요! 표현이 저렴하잖아요. 하하."

어떤 배우를 꿈꾸냐고 물었더니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 우리 사회가 잘 됐으면 해요. 그래야 저한테도 좋거든요. 제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건 없어요.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몇십년 일을 계획해서 사는 편은 아닙니다."

'고산자'의 예상 관객 수를 물었다. 차승원은 2일 일반 시사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관객들의 눈빛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단다.

주연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까. "어휴, 그건 '제 매력이 이러니까 잘 봐주세요'하는 것과 똑같아요. 제가 출연한 영화니까 닭살 돋게 자랑하긴 좀 그래요. 관객들이 돈을 내고 영화관에 오는 건데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 몫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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