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통찰력 있는 해설로 야구 중계를 시청자들은 물론 함께 방송을 하는 동료들까지 놀라게 했던 인물이 바로 하일성 씨다. KBSNSPORTS 중계화면 캡처
야구계의 또 하나의 별이 졌다.
전 야구 해설가 하일성 씨가 8일 7시56분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68세.
한국 야구계에서 그 어떤 위대한 선수나 감독보다 유명했던 인물이, 그것도 이렇게 허망하게 생을 접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1949년 서울서 태어난 하일성 씨는 성동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64년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해 환일고에서 체육교사 생활을 하다 1979년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이후 1982년부터 KBS 스포츠국 야구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방송에서 스포츠 전문 해설자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부터 야구 해설자로서 중계석에 앉아 해박한 야구 지식을 전달하는 한편, 선수들의 심리까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면서 앞으로 전개될 경기상황을 예측하는 특유의 통찰력 있는 해설로 야구 중계를 시청자들은 물론 함께 방송을 하는 동료들까지 놀라게 했던 인물이 바로 하일성 씨다.
덕분에 그는 2004년 스포츠부문 최초로 방송대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2006년 5월 24년간 잡았던 마이크를 내려놓았지만 2010년에 스포츠케이블 방송에서 다시 해설을 맡아 2014년까지 활약했다.
야구 해설가로서뿐만 아니라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와 유려한 말솜씨를 앞세워 1980-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KBS ‘가족오락관’, ‘아침마당’ 등 교양-예능 프로그램의 단골로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능력을 발휘했고, 최근까지도 각종 프로그램에서 활약해 왔다.
그가 방송 중에 들려준 유명 야구인부터 연예인까지 유명인들과 벌인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다음날이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렇게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하일성 씨는 건강에 이상이 오면서 2002년 심근경색으로 사경을 헤매는 일도 경험했다. 술과 담배를 즐기는 생활습관도 원인이 됐다. 결국, 세 차례 수술 끝에 다시 삶의 기회를 얻은 그는 이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멋지게 재기했다.
또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제11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으로서 한국 야구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 등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데 기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프로야구가 국민 스포츠로서 자리매김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방송 중에 들려준 유명 야구인부터 연예인까지 유명인들과 벌인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다음날이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채널A 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하일성 씨는 최근 여러 가지로 부침을 겪었다. 최근 사기사건, 피소, 음주운전 적발 등으로 구설에 휘말려 적잖이 힘든 시기를 보냈고 수년 전 절친하게 지냈던 부동산 업자의 말에 속아 100억 원 상당의 빌딩을 날린 이후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어왔고 심각한 우울증까지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프로구단 입단 청탁을 빌미로 5000만 원을 받아 사기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재판으로 넘겨지기도 했다. 하일성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억울하다’며 참담한 심경을 격정적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도 이 사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온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 데 따른 울분을 떨쳐내지 못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아직까지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가족들에게 보내지 못한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만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일성이라는 최고의 야구 해설가를 잃은 지금 가장 떠오르는 말은 그가 야구 해설을 하면서 즐겨 했고, 야구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야구 몰라요”란 말이다. 종종 인생에 비유되는 야구에 대해 “야구 몰라요”라고 했던 그의 멘트는 결국 그 자신에게 “인생은 모른다”는 말로 귀결 되는 듯하다.
일반인들에게 유명 연예인이나 사회적 명사의 죽음은 그저 ‘애석한 남의 일’로 여겨지지만 대한민국의 야구팬들에게,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하일성 씨가 어떤 이유로 유명을 달리했든 그 이유와 상관없이 그의 죽음이 단순히 애석한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오랜 기간 야구인으로서, 그리고 방송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하일성 씨와 함께 했던 추억만을 떠올린다. 그것이 고인이 원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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