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 "중년 불륜 그린 이유 따로 있다"

부수정 기자

입력 2016.09.20 06:55  수정 2016.09.27 09:06

첫 장편 연출 데뷔작서 박혁권과 호흡

결혼·사랑 통해 '행복' 말하고파

배우 조재현은 영화 '나홀로 휴가'를 통해 첫 장편 데뷔했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차라리 개봉 안 했으면 좋겠어요."

감독이 자기가 만든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 연출 데뷔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영화 '나홀로 휴가'(22일 개봉)로 감독으로서 첫 장편 데뷔 신고식을 치른 조재현(51)은 상영관 확보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올 초 전수일 감독의 영화 '파리의 한국 남자' 홍보 인터뷰 때도 조재현은 비슷한 말을 했다. "영화 홍보가 신이 나지 않는다. '언제 개봉했니?'라는 얘기 들을 게 뻔하다. 독립영화는 모래성이다. 들어갔다가 곧 사라지니까."

'파리의 한국 남자'가 출연작이고, 독립영화이지만 '나홀로 휴가'는 규모가 작은 상업영화이자 조재현의 첫 장편작이다.

13일 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에서 만난 조재현은 "현재 확보된 상영관이 없다"고 토로했다. "연휴 등 극장 성수기 때 이런 영화를 극장에 걸어달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예요. 저도 공연장을 운영하니까 잘 알아요. 그래도 비수기 때는 다양한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안 열리는 거 보니 쉽지 않은 현실이죠."

'나홀로 휴가'는 10년을 하루 같이 옛사랑을 쫓아온 한 남자의 지긋지긋한 사랑과 지고지순한 집착에 관한 스토킹 멜로다. 조재현이 연출, 투자, 제작 모두를 맡았다.

조재현은 "영화가 걸려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현실을 잘 안다. 연극처럼 하루에 한 회 상영하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나홀로 휴가'는 상당히 불편하다.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결혼생활의 민낯과 인간의 욕망을 들춰낸다. 여성 관객들이 10년간 바람을 피우며 한 여자를 쫓아다니는 남자를 보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조재현 연출, 박혁권 주연의 '나홀로 휴가'는 10년을 하루같이 옛사랑을 쫓아온 한 남자의 지긋지긋한 사랑과 지고지순한 집착에 관한 스토킹 멜로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조재현은 "40대 남성을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풀다 보니 그런 얘기를 들었다"며 "여성 관객들이 보면 불쾌하게 느낄 법도 하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아내의 반응을 물었더니 "아내는 내 연기와 연출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는다"며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극 중 유부남 강재(박혁권)는 요가강사 시연(윤주)에게 미쳐 10년 동안 그녀의 곁을 맴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으로 찍고, 급기야는 집에 찾아간다. 강재의 아내는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한다. 영화는 이 남자의 '10년'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한 남자의 불륜과 결혼생활을 통해 조재현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행복'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했다. "40~50대 부부 중 행복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해서 그냥 사는 거지 아내에 대한 사랑은 없어요. 물론 소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겠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결혼이라는 걸 합니다. 개인의 행복과 가정의 행복이 꼭 들어맞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결혼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행복한 결혼을 하자는 거죠."

강재의 친구 영찬(이준혁)은 부부가 10년간 의무적으로 살고, 5년 단위 재계약 형식으로 결혼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재현은 "술자리에서 떠들었던 얘기를 영화에 넣었다. 재계약 형식으로 결혼제도를 바꾼다면 부부가 서로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노력하면서 잘 살자는 게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통해 '너 지금 행복하니?'라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기자들을 본 그는 "지금 이 인터뷰 자리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없는 듯하다"고 했다.

확신에 찬 듯한 그에게 물었다. "행복하냐"고. 그랬더니 "행복하지 않다"는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불륜을 미화하려는 작품은 절대 아니에요. 그냥 우리의 민낯을 보여 주고 싶어요. 치부를 드러내는 건 수치스럽고, 더러운 일인데 그런 부분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죠."

영화 '나홀로 휴가'를 연출한 조재현은 "박혁권이 연기를 정말 잘해줘서 만족스럽다"고 밝혔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강재의 아내는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이후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묻는다. "다시 태어나면 나랑 결혼할 거야?"라고. 이어 아내는 눈물을 쏟는다. 이 부분은 감독의 지인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지금은 이혼하지 않고 잘 산단다.

조재현은 아내와 함께 출연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아내는 다시 태어나도 조재현과 결혼할 것이라는 긍정의 대답을 내놨지만 조재현은 '세모' 팻말을 들었다. 예능이라서 웃기려고 했는데 아내는 화를 냈단다. "아내에겐 평범하고, 모범적인 회사원 가장이 어울려요. 전 자유분방하거든요. 근데 어쩌겠어요. 사실 남자들은 그런 질문 자체가 짜증 납니다(웃음)."

주연 박혁권은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 "불륜도 사랑의 한 갈래다", "바람의 미덕도 있다" 등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를 언급하자 조재현은 "불륜도 사랑이지, 그럼 뭐예요?"라고 되물었다. 육체적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더 잘 사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40~50대 남자들은 이해하는 얘기입니다. 외롭게 직장 다녔지만 집에선 잘 알아주지도 않고. 그러던 찰나 행운처럼 누군가가 찾아온다면 어떨까요? 그 시간이 한 남자에겐 무엇보다 소중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사랑의 반대말은 '잊힌다는 것'"이라며 "가장 잔인한 게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잊는 것"이라고 극 중 강재의 '10년'을 부연설명했다.

조재현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트레일러영상을 두 차례 연출했고, 단편 다큐 '김성수 할아버지의 어느 특별한 날'과 가수 임재범이 리메이크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뮤직비디오 연출 경험이 있다. '김성수 할아버지의 어느 특별한 날'은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영화 '나홀로 휴가'를 연출한 조재현은 "개봉관 확보가 힘들다"며 "다양한 영화가 극장에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이번 '나홀로 휴가'는 8시간 만에 대본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현은 "그건 잘못된 정보"라며 "박혁권이 잘못 얘기했다"고 웃었다. "혁권이가 과하게 편집했네요. 하하. 근데 대본을 빨리 쓰긴 했어요. 네 번에 걸쳐 썼는데 22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그는 "감독으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 없이 편하게 찍었다"며 "영화가 조금은 불친절하더라도 난 만족하고, 영화에 대한 평은 관객들의 몫"이라고 했다. 이어 "연출, 시나리오를 배운 적이 없어서 아쉬운 부분은 있다"며 "편집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혁권이가 잘못 말 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한 조재현은 SBS '펀치'(2014~2015) 종영 이후 2~3개월을 투자해 영화 작업에 매달렸다. 원래는 주연으로 나서려고 했으나 '펀치'에서 호흡을 맞춘 박혁권의 매력을 보고 그를 주인공으로 택했다. '펀치'에서 박혁권의 이름도 강재다. "전 금수저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지질한' 강재 역에 안 어울리는데 혁권이는 딱 들어맞았죠. 하하."

그러면서 박혁권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펀치' 출연 전까지 혁권이를 몰랐는데 연기를 정말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호흡을 맞춰 보니 진짜 잘하는 거예요. 그간 혁권이가 담배 한 보루 받고 독립영화 출연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도움 안 된다. 하이틴 스타면 모를까. 할 거면 시간을 더 투자해서 주연을 맡아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섭외를 위해 혁권이에게 들이댔습니다(웃음)."

미혼인 박혁권은 불륜 연기를 실감 남게 펼쳤다. 너무 실감 나게 펼친 터라 박혁권 자체가 나쁘게 보일 정도다. 조재현은 "박혁권 연기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 기분이 좋고, 내가 혁권이에게 잘못하지 않았구나 싶다"고 말했다.

박혁권의 출연료에 대해선 "혁권이가 출연료의 반을 스태프를 위해 내놓았다"며 "스태프에게엔분의 일(1/N)로 나눠주느라 애먹었다"고 웃었다.

영화 '나홀로 휴가'를 만든 조재현은 "불륜 소재를 통해 행복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연출은 전수일, 전규환, 김기덕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마이너 성향'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투자, 제작도 그가 나서서 했다. "뭘 믿고 투자하겠습니까. 손해 볼 확률이 높잖아요. 제가 감수하기로 한 거죠. 제작비를 지원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저보다 더 어려운 감독들을 위한 곳이에요. 전 그래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수현재씨어터가 있는 대학로에서 많이 찍어서 제작비를 절감했죠."

포스터는 스튜디오 빌릴 예산이 없어 후배 사진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영화 속 한 장면을 포스터에 넣기로 하고, 어떤 장면이 낳을까 신경 썼다고. 강재가 시연의 집 장롱 안에서 소변을 보고, 시연에게 걸린 후 추하게 걸어나오는 포스터 속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한 남자의 '지질함'이 묻어나온다. "강재는 '지질한 남자'예요. 강재가 시연 부부의 옆 콘도에서 토한 것도 그걸 의미하죠. 좋아하는 여자를 일부러 괴롭히는 남자를 뜻해요."

극 중 나오는 콘도, 요가학원, 기원 등 장소의 배치는 조재현의 잔머리에서 나왔단다. 다년간 저예산 영화에 출연한 경험을 바탕으로 연출했다고.

큰 규모의 상업 영화 연출 생각은 없냐고 했더니 "대단한 돈을 벌기 위해서나, 상을 받으려고 이 영화를 찍은 것은 아니다"라며 "20억, 30억을 들인다고 해도 지금 수준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개봉에다, 연극도 하고, 22일부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로 더 바빠진다. 2009년 문을 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어느덧 8회째를 맞았다. 조재현은 이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다.

영화 '나홀로 휴가'를 연출한 조재현은 "관객들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고 싶다"고 전했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바쁘고 피곤할 텐데 사명감 때문에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명감, 책임감 때문에 한다는 말 너무 싫다"고 못 박았다.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란다. "처음에는 욕 많이 먹었죠. '지가 뭐라고, 다큐도 잘 모르는 게'라며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평이 좋아졌어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건강한 영화제를 추구해요. 외형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알차야 합니다. 개막작은 중요하니까 제가 직접 관여해서 선택하고요."

조재현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연기자로 활동 중인 딸 조혜정이다. 조혜정은 아빠 덕에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는 '금수저 논란'에 시달린 바 있다. 딸 얘기가 나오자 조재현은 "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딸 얘기만 하면 그 얘기만 기사화된다.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은데 안 하고 싶다. 딸이 출연한 영화 중에 개봉 못 한 독립영화도 많다. 오디션에서도 자주 떨어졌다"고 했다.

"행복하지 않다"는 조재현이 그나마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하러 부산에 가요. KTX 타고 가는데 그 과정이 힘들고, 피곤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부산에 가는 세 시간이 참 행복하고 편해요. '나만의 행복, 그게 나한테도 있구나' 깨닫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서 창밖 풍경을 다 외웠죠. 자다 깨도 어디인 줄 알아요. 허허."

그는 SBS 추석 파일럿 예능 '드라마게임 씬스틸러'의 진행자로 나섰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들이 모여 '드라마와 리얼 버라이어티'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연기대결 프로그램이다.

방송 전 인터뷰 한 그는 "새로운 시도라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빠를 부탁해' PD가 부탁해서 출연했는데 신동엽 씨랑 진행했는데 내가 MC 본능이 있더라고. 참 신기했지.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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