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길 주연의 영화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김남길 주연·'연가시' 박정우 감독 연출 원전 소재 내세운 재난 블록버스터
"우리는 불행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원전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판도라'에 참여한 감독, 배우가 한 말이다. 원전 사고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이 영화는 개봉이 연기되면서 외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시국에 영화를 선보이게 된 감독과 배우들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영화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산영화제 아시아 필름마켓에서도 '부산행'을 잇는 새로운 재난 소재의 블록버스터로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살인 기생충이란 독특한 소재로 450만명을 모은 '연가시'(2012)의 박정우 감독이 연출했다. 제작진은 제작 기간 4년 동안 원전과 관련된 전문 서적, 영화, 다큐멘터리 등 자료조사를 펼쳤다.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원자력 발전소의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필리핀으로 건너가 관광지로 개발된 바탄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재난 영화인만큼 수준 높은 컴퓨터 그래픽(CG)이 중요하다. 제작진은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과 압도적인 스케일을 구현하기 위해 전체 2400컷 중 1300컷 이상을 최첨단 CG로 구현했다. 시각 효과 작업에만 1년이 걸린 이유다.
9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박 감독은 "영화가 개봉 단계까지 올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자료 조사, 시나리오 작업에 긴 시간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이어 "시나리오 작업 1년, 촬영 1년 6개월 등이 걸렸고 장소 협찬이 어려워서 후반 작업이 길었다"며 "외압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여러 작업을 거치다 보니 개봉이 미뤄졌다.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판도라'는 원전 사고라는 절망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박 감독은 현 시국을 언급하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지금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며 "최근 사태를 보면 '이게 나라냐' 이런 욕이 나오는데 도올 선생이 '절망스럽지만 잘못된 것을 도려내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우리 영화도 그런 의미에서 봐주셨으면 한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이 원전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마무리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김남길 주연의 영화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영화에는 "대통령이 한 게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를 두고 박 감독은 "4년 전에 쓴 시나리오가 지금 상황과 맞닿아 있어 깜짝 놀랐다. 대통령을 한국에서 표현하는 게 힘들어서 창작자로서 부담스럽다. 멋있게 만들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들면 짜증 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에서는 대통령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대통령이 각종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이 모두 나온다"고 했다.
박 감독은 또 "문화계 블랙리스트 감독으로서 화가 나고 우울하기도 하다"며 "이 영화에 참여한 분들은 사명감, 책임감이 있다. 세상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희망적이었으면 한다는 심정으로 영화를 선보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남길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재난에 맞서는 발전소 인부 재혁 역을 맡았다. 김남길은 "소재를 떠나서 이야기가 재밌어서 욕심이 났다"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라 말투, 억양에 신경 썼다. 이야기, 캐릭터, 상황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원전 소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보여준다"며 "인간과 자본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재난 이야기를 담았는데 답답한 시국에 영화를 선보이게 됐다"고 했다.
김남길은 또 "난 외모를 내세우는 배우가 아니다"라며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눈빛을 통해 보여주는 감정 연기, 힘을 들이지 않고 하는 편안한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남길 주연의 영화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문정희는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는 정혜 역을, 정진영은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발전소 소장 평섭 역을 각각 맡았다. 김영애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월촌리 주민이자 재혁의 엄마 석여사로 분했다.
문정희는 "재난 영화 전문 배우가 됐다"고 너스레를 떤 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영화에 어떻게 담길까 궁금했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정진영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무사히 개봉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원전 문제를 안일하게 생각하는 관계자를 다루는 점에 끌렸다. 원전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부자들'이 현실을 너무 과장해서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사회가 '내부자들' 모습이다. '판도라'도 픽션으로만 볼 수 없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그린 영화"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 출연했다고 해서 내가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영화에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있을까 걱정했을 뿐이다. 창작자가 불이익을 당할 것을 떠올리는 사회는 못돼먹은, 불행한 사회다. 표현이 자유가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정진영은 또 "지금 사회를 보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정도다. 숨겨진 일들이 드러나서 온 국민이 염려하는 상황이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래도 정진영은 희망을 믿는다고 했다. 그는 "온갖 불행이 있지만 그 속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며 "'판도라'가 무서운 세상을 그렸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관객들이 발견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위험에 처한 동료들을 구하고자 하는 재혁의 친구 길섭 역에 김대명, 재혁의 여자친구이자 발전소 홍보처 직원 연주 역에 신예 김주현, 재난 앞에 놓인 젊은 대통령 석호 역에 김명민이 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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