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떠나려는 '탄핵' 화살, 과녁까진 첩첩산중
탄핵까지 최대 8개월, 정진석 "탄핵 절차 동의와 탄핵 찬성은 다른 문제"
청와대 '탄핵 유도설'까지...야당 "헌재 압박해야"
야권발 박근혜 대통령 탄핵론의 핵심은 '시간'의 문제다. 일단 탄핵안 국회 통과도 쉽지 않지만, 설령 헌법재판소에 넘어가도 결정하는 데만 최장 180일, 두 관문을 통과할 때까지 최대 8개월이 걸린다. 청와대로서는 보수층 재집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정국을 전환할 시간적 여유도 넉넉히 버는 셈이다.
여야와 촛불민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오히려 "사퇴는 없다. 차라리 탄핵하라"며 전면전을 선포한 배경이다. 지난 20일 검찰이 박 대통령을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적시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자,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탄핵을 의미하는 '헌법상 법률상 합법적 절차'를 직접 거론했다.
정국 전환용 이슈도 손에 쥐었다. 박 대통령이 최근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부산 해운대 LCT 비리 사건을 전면에 내걸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탄핵안 통과 문제로 여야가 지리한 공방을 이어가고, 헌재가 다시 시간끌기를 하는 동안에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을 겨냥, 검찰 수사를 이슈화하면서 탄핵 정국이 식기를 기다린다는 의도로 읽힌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가 쳐놓은 정치적 덫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공모'를 인정한 검찰 수사 결과를 정면 부인하며 오히려 탄핵을 유도해 시간을 지체하려는 시나리오에 야권이 발목잡힌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따라서 야권으로서는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200석(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을 담보해낼 방안과 △헌재가 단기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압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안 국회 통과부터 헌재 결정까지 63일 만에 이뤄졌던 판례를 근거로 한다.
첫번째 과제는 국회 통과다. 새누리당 비주류계 의원들이 이날 비상회의를 소집해 32명이 탄핵 절차 착수에 동의했지만, 이들이 표결에서 실제로 찬성표를 던질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탄핵 절차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동의이지, 탄핵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SNS에 "야당이 박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할 경우 여당 원내대표로서 이에 응할 수밖에 없지만, 탄핵 절차를 밟는 데 동의하는 것과 탄핵에 찬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당내에 탄핵에 반대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비주류 그룹 의원들이 탄핵 논의에 착수키로 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에 일일이 연락을 취해 "강의차 회의 초반에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탄핵 논의에 동참하지 않았다"며 본인의 이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야당 및 무소속 의원 171명 전원이 탄핵에 찬성해도, 새누리당에서 29명이 탄핵에 찬성해야 탄핵안 가결 조건이 성립된다. 민주당이 21일 '탄핵 추진' 당론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으면서도 탄핵안 발의를 망설이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발의 요건(재적의원 과반수)만 갖춰졌을 뿐, 통과 가능성을 확언할 수가 없어서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 직후 '이번 주 중 탄핵안 발의가 가능한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탄핵안 통과가 가능하다고 판단해야 발의를 하지, 발의한 순간부터 시간제한이 있는데 발의만 해놓고서 그냥 기다릴 수는 없다"면서 "탄핵안이 당연히 부결될 텐데 왜 발의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탄핵안은 헌재로 넘겨진다. 이 역시 '시간끌기'가 우려되는 단계다. 헌재가 탄핵안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6개월 동안 심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1월 31일 임기 만료를 앞둔 박한철 소장과 내년 3월 중 임기가 만료되는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임명 작업이 지연될 경우, 헌재 재판관 7명 중 6명이 찬성표를 던질지도 안개속이다. 헌재 재판관(총 9명) 중 결원이 생겨도 탄핵 결정에는 최소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박 소장은 2013년 박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받은 인물로서, 그의 후임은 대통령 또는 대통령 탄핵 시 권한 대행이 국회 인사 청문을 거쳐 임명한다. 이 재판관 역시 대법원장이 추천해도 대통령 또는 권한 대행이 임명해야 한다. 즉, 박 대통령 또는 그 권한 대행이 임명을 지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선 헌재를 압박할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법적으로 헌재를 압박할 장치는 없다. 다만 과거 탄핵에 대한 판례가 있는 만큼, 이를 근거로 헌재가 시간끌기를 하지 못하도록 여론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민병두 의원은 21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헌재는 탄핵 등 모든 사안에 대해 6개월 간 심의하게 돼있는데, 노무현 대통령 때는 63일 만에 모든 결정이 끝났다”며 “이번에는 국정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임이 명백하고, 과거 두 달 안에 끝냈던 확고한 판례도 있으니 국민적 차원에서 헌재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또 "물론 최상의 로드맵은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대통령이 수용하고, 탄핵안 추진을 계기로 대통령의 퇴진선언을 끌어내 과도정부로 가면서 조기대선을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야권은 국회추천 총리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을 드러내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탄핵을 추진키로 한 것 외에 당내에선 구체적인 단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탄핵 정국이 지연되는 속에 박 대통령이 차관과 신임 외교대사를 임명하는 등 내정 권한을 적극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날 박 대통령을 압박할 전국단위 활동 기구로서 추미애 대표를 본부장으로 하는 국민주권운동본부 구성을 마쳤다. 주요 구성원은 중진 의원들로 이뤄졌다. 다만 모임에 참석한 의원 측 관계자는 "중진들이 자문역할 한다는 건데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며 "일단 총리를 바꿔서 대통령 권력을 일부라도 축소시키면서 가는 게 우선이지, 빨리 간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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