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to YOU] 기업리더의 결단이 성공을 부른다
리스크 감수한 과감한 결단은 기업 성장 원동력
리스크 감수한 과감한 결단은 기업 성장 원동력
국내 대기업들의 오너 중심 경영체제는 경제민주화 바람과 함께 단골로 도마에 오르는 논란거리다. 정경유착이나 오너의 사생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친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기반으로 과감한 결단으로 기업을 이끌어 온 오너가 사라졌을 때 발생할 리더십 부재에 대한 대안은 구체적이거나 현실적으로 논의되지 않는다. 기업이 전진, 안주, 혹은 후퇴의 기로에 섰을 때 리더가 내렸던 결단과 그로 인한 성공은 경제민주화 논의 과정에서 줄곧 무시돼 왔다.
한국 경제계는 기존 리더의 역할을 하던 오너가 사라지고 다수의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전문경영인이 키를 잡았을 때 기업의 명운을 가를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충분한 검증 기회를 갖지 못했다.
우리가 한때 전문경영인 체제의 모범 사례로 꼽았던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에 대응하는 과감한 투자와 방향전환의 결단을 내리지 못해 도태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경제 생태계 속에서 리더의 신속한 결단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고, 현 시점에서 국내 대기업들에게 있어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사안에 있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오너 뿐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 하만 인수' 차 부품 향한 이재용의 결단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미국의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 하만을 인수한 것은 규모 면에서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쉽게 결정이 불가능했을 대규모 투자 사례로 꼽힌다.
하만은 하만카돈, JBL, 뱅앤올룹슨, AKG, 렉시콘 등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전장사업부문 비중이 더 크다. 삼성의 하만 인수는 유망 신성장 사업인 자동차 전장사업 강화 차원에서 커넥티트카(Connected Car)와 오디오 분야 전문기업인 하만 인수는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만 인수가 무조건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투자건 실패의 리스크를 안게 마련이다. 삼성이 하만을 인수하기 위해 쓴 돈은 무려 9조원을 넘어선다. 실패로 이어진다면 타격이 크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었다면 섣불리 결정하기 힘든 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이런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삼성이 언제까지 스마트폰과 반도체로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동차 산업에서 점차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전장부품 사업은 먹음직한 시장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결단이 훗날 성공으로 평가받을지 실패로 비난받을지 모르겠지만 삼성으로서는 새로운 주력 사업을 육성해야 하는 시기에 누군가는 내려줬어야 할 결단이었다.
◆최태원의 하이닉스 인수...그룹 주력으로 우뚝
리더의 결단이 기업의 성공을 이끈 사례는 굳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같은 1세대 기업인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최근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2012년 초 SK그룹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반도체가 SK그룹의 3대 주력 사업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정보통신(SK텔레콤)과 에너지·화학(SK이노베이션 계열) 두 분야에 의지하고 있었다.
하이닉스 인수 추진 당시 SK그룹 내에서는 굳이 적자 기업을 인수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시절에 세계 2위 반도체 업체를 인수한다는 것은 적잖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과감한 결단으로 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했다.
2년 뒤인 2014년 SK그룹은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단통법 시행이라는, 에너지·화학 분야에서는 국제유가 하락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그룹의 양대 축인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이 부진한 가운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SK하이닉스였다.
최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정보통신 및 에너지·화학 불황 시기에 SK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 버팀목이 된 것이다.
◆과감한 인재영입...정의선의 디자인경영
오너의 과감한 결단이 ‘인재영입’이라는 측면에서 발휘된 사례도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부회장은 2005년 35의 젊은 나이에 현대자동차 그룹의 양대 축 중 하나인 기아자동차 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며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다.
그가 기아차를 맡았을 당시 기아차의 위상은 ‘현대차의 동생 브랜드’에 불과했다. 디자인이나 상품성, 브랜드 파워 등 모든 면에서 현대차 아류 급으로 평가받았다.
정 부회장은 정 부회장은 품질·마케팅·기술·가격 등 기존 역량만으로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차별화된 경쟁 우위 요소로 ‘디자인’을 선택했다. 기아차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디자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결정하고 전사적인 디자인경영에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정 부회장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폭스바겐 총괄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오너의 직접적인 비전 제시가 없었다면 슈라이어 정도의 거물이 자동차 후발국인 한국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당시 업계의 시각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직선의 단순화’라는 디자인 방향성과 ‘호랑이 코 그릴’ 패밀리룩을 기반으로 탄생한 포르테, K5, K7, 스포티지R 등 주요 차종들이 하나같이 디자인에서 호평을 받으며 히트를 쳤고, ‘디자인 기아’의 명성을 세계 시장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거물급 인재 영입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벤틀리·아우디·람보르기니 등 명차 디자이너로 유명한 루크 동커볼케와 람보르기니 브랜드를 총괄하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해외에서 이름을 떨치던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씨가 지금은 모두 현대자동차에서 일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정체는 곧 도태로 이어질 수 있기에 냉철한 판단에 근거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은 기업 생존에 필수적”이라면며 “오너 중심 경영을 무조건 비난할 게 아니라 이들의 결단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