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to YOU] 개헌론, 대선판 움직일 '독자적 변수' 될까
'5년 단임제' 폐해 공감대 불구 대선주자별 셈법 제각각
"조기 대선 정국서 개헌은 종속변수, 권력 나눠먹기 전락"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개헌론'은 대선 정국의 독립변수로 존립할 수 있을까.
그간 야권을 중심으로 수차례 회자됐던 개헌론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로 수렴되는 ‘5년 단임제’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된 상태다. 하지만 26년 만에 도래한 원내 4당 체제와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혼돈 속에 대선을 맞이하면서, 개헌은 이른바 ‘권력 나눠먹기’의 장으로 퇴색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개헌이 각 대선 주자군의 단골 주제로 언급되면서도 ‘블랙홀’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단일안의 부재’라는 게 전문가 그룹의 중론이다.
즉, 정치권 내에서 일정 부분 단일안을 도출할 수 있을 만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개헌은 모든 이슈를 흡입할 만한 절대성을 갖는다. 이럴 경우, 대선 주자들도 쉽사리 개헌에 손을 대기가 어려워진다.
문제는 현 상황 상 이러한 단계까지 접근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가 이미 각 진영의 정계 개편 시나리오를 위한 정략적 매개체로 전락한 상황에서, 개헌 자체로 독립적인 변수가 되기는 쉽지 않다.
시기도 방법도 제각각...“명분 사라지고 배는 산으로”
개헌 논의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 문제다. 실제 여야 차기 대선 주자들 간 의견이 가장 또렷이 갈리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구체적으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로 나뉜다.
‘대통령 중임제’는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에서 4년으로 줄이는 대신, 재출마를 통해 연임이 가능하도록 열어두는 제도다. 임기 초 1년은 국정운영 준비로, 임기 말 1년은 레임덕에 시달리느라 사실상 임기가 3년에 불과하다는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반면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이 초반 4년 간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거나 △재선 후 4년 내내 레임덕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8년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현재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유승민 개혁보수신당 의원 등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다만 문 전 대표의 경우, 개헌론이 현 정치판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개헌 논의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제의 승자독식 구조 자체를 고치는 데 초점을 둔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이 국방·외교 등 외치(外治)를, 국무총리가 내치를 전담하는 방식이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절충형이라 할 수 있다.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당장 현실성의 문제에 부딪친다. 대통령과 총리가 내치와 외치로 권한을 나누는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이원집정부제는 각자 다른 정치세력 간 이합집산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로 대표되는 권한을 분배할 수 있다. 제3지대 후보들이 이원집정부제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 의원과 같은 보수신당 소속이지만 김무성 의원은 이원집정부제를 바탕으로 한 개헌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또한 앞서 새누리당 친박(친 박근혜)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세워 이원집정부제를 제시한 바 있다.
권력 분산 차원에서 '의원내각제'도 언급되지만,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여론 상 실현 가능성이 낮다. 대통령은 명목상 국가 원수이며, 실제 권한은 선거로 선출된 다수당의 수장이 갖는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국정운영의 효율성도 높지만, 정부가 의회에 의해 결정되므로 집권당이 다수 의석을 얻지 못하면 정국 불안이 초래된다. 반면 한 정당이 의회와 내각을 독점하면 다수당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내각제 선호그룹에 속한다.
임기 단축·결선투표제·개헌 시기...접점 찾기도 아득
이뿐이 아니다. 더 세부적으로는 △대통령 임기 단축 △결선투표제 시행 △대선 전 개헌 여부 등을 놓고서도 주자들 간 셈법이 제각각이다. 임기 단축론은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줄이고, 오는 2020년에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자는 내용이 골자다. 특히 야권 내에선 문 전 대표를 제외한 군소 후보들이 적극적인 입장을 펼치고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1등을 한 후보가 과반의 유효표를 받지 못할 경우, 1·2등이 다시 2차로 투표를 치러 최다득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1차 투표에서 유권자가 군소 후보의 정책 및 공약도 충분히 고려해 소신 투표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또 2차 투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보 간 합종연횡 가능성도 높아진다.
최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군소 후보군을 중심으로 한동안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자체로 헌법 개정 사항이라는 게 다수설이기 때문에 학계의 충분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 현행 헌법 67조에 따라 대선 투표는 1차로 종결되며 이 때 최다득표자가 선출되는 방식을 전제로 한다. 즉, 1위 후보가 과반의 표를 얻지 못할 경우에 대한 조항 자체가 없다.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기 위해선 관련 조항을 ‘신설’해야 하므로 헌법 개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다가오는 조기 대선 정국에서 개헌은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표면적 명분만 같을 뿐, 대선 주자군이 각자의 셈법에 근거한 개헌의 시기와 방법을 내세우는 한, 현재의 개헌론은 ‘권력 나눠먹기를 위한 매개체’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정치권에서 개헌에 대해 실질적인 합의를 보고 어느 정도의 단일안이 나온다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 변수가 되겠지만, 각 주자들이 이미 정략적으로 접근해버린 상황에선 그 단계까지 가기는 어렵다”며 “설사 단일안이 있다고 해도 정치권의 논의 자체가 지극히 정략적인 상황에선 탄력을 못 받는다. 탄핵이 점차 다가올수록 개헌론이 이합집산의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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