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요율 산출 능력 키워라" 당국 요구에 손보사 냉가슴
금융위 "자체 보유 원수보험료 늘려라"…재보험 의존 관행에 '메스'
손보업계 "사실상 불가능" 볼멘소리…새 IFRS 도입 앞두고 냉가슴
보험요율 산출 능력을 키우라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손해보험사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보험에 기대는 관행으로 자체 평가 역량이 떨어지는 문제를 개선하자는 취지지만 손보업계는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란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10일 손보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손보사가 스스로 사고위험과 요율 등을 평가·산출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 과도한 재보험사 의존 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우선 금융위는 외형경쟁을 부추기는 경영 공시 기준을 고칠 예정이다. 현재 보험사 경영 공시는 보험계약자로부터 받은 전체 보험료인 '원수보험료'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원수보험료에서 재보험사에 지급한 보험료를 뺀 '보유보험료'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원수보험은 많지만 과도한 재보험 출재로 실제 사고 위험은 부담하지 않는 외형만 큰 보험사와 스스로 위험평가 역량을 키워가는 보험사 간 옥석을 가리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일정 수준의 원수보험을 의무적으로 보유하게 하는 등 손보사의 요율 산출 능력을 강화를 위한 재보험 관련 규제 체계를 고려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자체 위험 관리 능력이 큰 보험사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손보업계의 재보험 의존도를 낮추는데 총력을 다 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손보사들은 원론적으로 좋은 얘기일 뿐, 당장 현실화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인 탓에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보험사들의 고민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사 자체 보유 원수보험을 늘려야 한다는 방침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면서도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역량을 갖춘 보험사는 사실상 업계 1위인 삼성화재뿐이며, 모든 손보사들이 이 같은 능력을 갖추기는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사고위험과 요율 평가의 기본은 누적된 데이터의 규모"라며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보험사들과 비교해 봤을 때, 그만한 경험치를 갖고 있는 국내 손보사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보험사들이 금융당국의 정책 추진에 발을 맞추려다 오히려 화를 입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부채 평가에 훨씬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둔 시점에 나온 방안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오는 2021년 IFRS17이 적용되기 전까지 한창 유동성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할 보험사 입장에서 떠안아야 할 위험이 더욱 커진다는 점은 불안요소일 수밖에 없다.
다른 손보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내놓은 정책에 어떤 형태로든 응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당장 역량을 갖추기 힘든 중소보험사들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무리하게 원수보험 보유를 늘린 상태에서 자칫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에 보험사가 흔들릴 수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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