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후임 재판관 인선', 주판알 튕기는 정치권
공정성 논란 우려 vs 선고 지연시켜야
vs 신속 대선 치러야 '속내 제각각'
‘촛불집회’, ‘탄핵’, ‘정계 개편’, ‘조기 대선’…
모든 정치 일정의 ‘키’를 쥔 헌법재판소는 후임 소장과 재판관을 인선할까.
당초 2월 말 경으로 예상됐던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불가능해지면서, 여론의 시선은 내달 13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향하고 있다. 그 전에 탄핵심판이 결정되지 않을 경우, 향후 심리는 김이수 재판관의 권한대행 하에 7인 체제에서 이뤄져야 한다. 7인은 헌재가 사안을 논의 및 선고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이다.
특히 내달 14일부터는 재판관 중 단 1명만 신변에 문제가 생겨도 탄핵심판 절차 진행 자체가 중단된다. 물론 헌재는 오는 22일까지 증인신문을 마치고 2월 중 선고를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각종 변수가 많아 이 역시 확언이 어렵다. 이렇게 되면 탄핵 인용 여부가 더욱 불투명해져 여론과 정치권도 혼돈에 빠진다.
이에 따라 헌재소장 및 재판관 공석사태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셈법도 복잡하다. 여야 모두 조급하긴 마찬가지지만, 주판알을 굴리는 속내는 제각각이다. 야권에선 조기 대선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여권은 탄핵을 늦출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모습이다.
특히 정국 주도권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탄핵 통과와 함께 대세론을 업고 가능한 한 빨리 대선을 치르는 게 급선무다. 따라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신속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헌재소장과 재판관 임명을 모두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정지된 상태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소장 및 재판관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법적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반대로 여권에서는 △원칙대로 ‘9인 체제’를 다시 꾸려야 한다는 주장과 △적어도 ‘8인 체제’는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특히 법조인 출신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소장과 재판관 임명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공석 상태로 선고를 할 경우, 이후 공정성 시비가 붙어 불복 논란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바른정당 소속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장 등 여권 일각에선 헌재소장은 제외하더라도 이 재판관의 후임은 임명해 최소 8인 체제는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헌재 소장은 ‘대통령 몫’이지만, 재판관은 ‘대법원 몫’이라는 것을 전제로, 후임 재판관은 실질적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측도 표면적으로는 법적 원칙을 내세워 9인 체제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후임 헌재소장 및 재판관 인선에만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만큼, 사실상 탄핵심판 선고 자체가 지연되는 점을 노린 전략으로 읽힌다.
물론 법조계에서도 각각 ‘신속성’(7인 체제), ‘최소한의 공정성’(8인 체제), ‘원칙’(9인 체제)에 방점을 찍은 주장들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탄핵 자체가 워낙 중대 사안인 데다, 최종 결과에 따라 진영을 막론하고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다. 따라서 법리적 가능 여부를 따지는 과정에 앞서 이러한 ‘상황 변수’를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소장 임명에는 대통령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권한대행은 불가하지만, 재판관은 대법원장이 지명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라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면서도 “현 상황에서 재판관을 새로 임명하는 상황변수 때문에 탄핵이라는 중대 사안의 판단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평상시라면 헌재 재판부가 순서에 따라 충분히 후임 임명을 해야 하지만, 현재 탄핵은 비상상황이고 비정상적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탄핵 결정을 신속히 내려서 이러한 비상상황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면서 “탄핵 결정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법리적으로 가능·불가능을 따질 단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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