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문 대통령이 해야만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


입력 2017.12.25 09:13 수정 2017.12.25 11:12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대통령은 남이 보지 않을 때 울어야한다

조문하고 욕먹는 일보다 급한건 안전시스템 개혁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현장을 방문, 현장을 둘러본 뒤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다.

“유가족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건물의 대형 화제 희생자들을 조문한 뒤에 한 말이라고 보도됐다. 박수현 대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또 울먹였다.”

박 대변인은 그렇게도 썼다. 그의 ‘문 대통령 울음 예찬’은 이어졌다.

“문 대통령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 아니, 문 대통령은 분명 울고 있었다. 희생자 한 분 한 분 앞에 대통령은 일일이 엎드렸다.”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내 일.”

“국민을 위해 울어주는 대통령! 국민의 욕이라도 들어야 한다는 대통령! 국민 한 분 한 분에게 엎드리는 대통령!”

대통령의 울음으로 제천 화재 사망자들의 영혼, 그 유족과 부상자들은 얼마나 위로를 받았을까? 물론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더 위안을 얻었을까? 아무리 대통령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고 해도 유족만큼이나 했겠는가. 아무리 대통령의 고통이 크다 한들 심한 화상을 입거나 유독가스를 마신 부상자들만이야 하겠는가. 그런데도 박 대변인은 대통령의 슬픔과 울음만을 선전하기에 바빴다. 대통령의 자기 위안이 더 크지 않았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도 세월호 침몰 다음날 팽목항과 침몰현장에 가서, 또 유족들을 만나서 울고 울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소속 의원으로 있던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좌파 세력은 ‘7시간의 미스터리’를 다양한 버전으로 창작해서 퍼뜨리며 맹렬한 공격을 집요하게 가했다.

박 전 대통령 실각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의 충격과 희생자 유족들의 고통‧슬픔‧분노‧원망이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이를 증폭시킨 측이 당시의 야당이었고 그 한 가운데 문 대통령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계기 때마다 눈물을 보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대통령에게는 이처럼 말 못할 어려움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을까?

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 ‘군사적 대응’은 아예 염두에조차 둬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미국을 견제해왔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안 놓여 중국 시진핑 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합의했음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한사코 막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지난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현실적으로 (북한 핵문제는)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고 무력감을 피력했었다. 9월 27일엔 여야 정당 대표 초청 대화에서 “우리가 주도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고 우리 처지를 밝혔다. 10월 10일 5부 요인들과 오찬을 하면서는 “안보위기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 한다”고 토로했다.

사고만 나면 조문하고 울 텐가

“우리의 힘은 약하다. 우리 차원에서는 달리 대안도 없다.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 또한 거의 안 보인다. 그렇지만 미국의 군사적 대응 의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 시 주석과도 합의했다.”

추측키로 이런 뜻이다. 이게 국정최고책임자로서, 군통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또 해도 되는 말인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안보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대형재난에 대해서도 유사한 심리적 반응을 보였다.

“유가족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이라면 국민에게 정부는 무엇인가. 문 대통령은 대형사고 때마다 아주 기민하게 대응(혹은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달 15일의 포항 지진, 지난 3일의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때도 현장을 찾아, 유족과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하듯 했다. 낚싯배 전복사고와 관련해서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10초간 묵념을 하기 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선언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격려하는 것이야 나쁘다고 할 까닭이 없다. 사랑이야말로 리더십 덕목 가운데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진정한 염려와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 국민은 큰 위안을 얻을 것이고 국가에 대한 귀속감과 애착심 또한 더 돈독해 질 것이다.

그렇게 여기는데도 문 대통령과 측근의 상황대처 방식은 갈수록 난해해진다. 제천 참사의 유족들이 조문을 간 문 대통령에게 따진 말은 “안전시스템이 뭐가 나아진 게 있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유족은 “와서 사과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뭘 와서 얘기를 듣겠다고 하고 서 있는 거야, 지금! 왜 세월호 때 박 대통령만 문책 받아야 돼!”라고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아마도 세월호 학습효과 같은 것이겠지만 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현장 달려가기, 묵념하기, 같이 울며 원망 들어주기, 책임통감하기 등은 거듭될수록 의무가 되고 만다. 게다가 자칫 ‘쇼잉’으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만전의 대책이란 있을 수 없다. 컴퓨터에도 오류가 나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 오죽하랴. 그걸 국민도 안다. 문제는 자신들이 사고를 너무 이용한 데 있다.

사고 수습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이 다뤄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조문하고 욕먹고 하는 일만 하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이미 시작했다. 유사시에 조문, 묵념 같은 절차를 거르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대형 사고’의 경우로 한정한다 해도 그 기준을 정하기란 난제 중의 난제다. 몇 명이 사망하는 사고라야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고, 집단 묵념의 대상으로 하며, 국가가 책임을 질 일이 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모든 사망자에 대해 똑 같은 예를 갖추라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 그 걸 못 들어주면 원망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직책에 따르는 직분을 다해야

한(漢)의 문제(文帝)는 정치를 제대로 해 보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는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전국의 1년 동안 재판 건수는 얼마나 되오?”

주발은 모른다고 했다.

“1년 동안 돈과 곡식의 출납은 얼마쯤 되오?”

주발은 역시 대답을 못했다.

황제가 좌승상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정무에는 각각 책임자가 있습니다. 재판의 건수를 아시려면 정위(廷尉)에게 물어보셔야 하고, 돈과 곡식에 대해서는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공은 무엇을 맡아보고 있소?”

“재상된 자는 위로는 천자를 돕고, 천지 음양을 조리(調理)하며 춘하추동에 재해가 없게 하고, 아래로는 만물이 다 알맞게 생육케 하며, 밖으로는 오랑캐를 진무하고, 안으로는 백성을 심복시키며, 경대부로 하여금 그 직분을 다하게 하는 일을 맡습니다.”(십팔사략)

한 선제 때의 재상 병길(丙吉)의 문우천(問牛喘) 고사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병길이 어느 날 외출했다가 패싸움을 목격했다. 많은 사람이 다쳤으나 그는 그냥 지나쳤다. 한참 가다가 소가 헐떡이는 것을 봤다. 재상은 하인들을 시켜서 몇 십 리나 그 소를 끌고 왔는지를 알아보게 했다. 누가 이일을 전해 듣고 사람 다친 것은 모른체 하면서 소가 헐떡이는 것을 물은 것은 일의 경중을 모르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병길이 이에 대해 말했다.

“백성의 다툼에 대해서는 경조(京兆)의 윤(尹: 지방장관)이 단속할 것이요, 재상은 세세한 일에 손을 댈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봄이어서 더운 시기가 아닌데, 소가 숨을 헐떡이는 것은 덥기 때문일 터이니, 이는 곧 계절이 잘못된 때문이다. 삼공(三公)은 선정을 베풀어서 음양을 고르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소가 헐떡이는 것은 내 직책상 근심되는 일이다.”(위의 책)

직책이 나뉘어 있는 것은 각각 할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겐 대통령의 일, 장관에게는 장관의 일, 각급 공무원에게는 각각에 부여된 과업이 있는 법이다. 대통령이 자상하고 다정다감하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런데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대통령은 울 일이 있더라도 남이 안 볼 때 울어야 한다. 국민이 보는 데서는 관련 제도가 잘 갖춰졌는지, 정부 해당 기관들이 잘 작동되고 있는지, 국무위원들을 비롯해 모든 공무원들이 공복으로서 제몫의 과제들을 성심껏 처리하고 있는지를 챙길 일이다. 대통령이 아랫사람들의 책임과 역할과 기능을 다 차지해버리면 그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말 비범한 판단력‧대응력을 보여줘야 할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동맹국과 엇박자를 내거나 무력감을 드러내면서, 측근이 페이스북으로 전파시킬만한 감성정치에는 너무 매몰되어 있는 인상을 주고 있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인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