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 듯 필연 된 '삼성 vs 금융당국' 전면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공방…삼성생명 지분 논란 여전
오너 일가 지배구조로 향한 칼날…외나무다리 승부 결말은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과 금융당국 간 공방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삼성 저격수로 불리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등장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삼성생명 특혜법 논란이 불거진 데다 삼성증권이 유령주식 배당이라는 초유의 사고를 치며 분란을 키운 상황 속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까지 들고 나오면서 둘 사이의 대립은 정점을 향해가고 있다.
특히 이런 논란들이 처음에는 우연히 시작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창끝이 삼성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로 향하게 되면서 금융당국과 삼성그룹은 필연처럼 외나무다리에 마주서게 됐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감리를 완료하고 회계처리 위반이 있었다고 잠정 결론지었다. 금감원은 상장 전 분식회계 논란이 일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대상으로 지난해 3월부터 특별감리에 돌입한 지 1년여 만에 이 같이 판단했다.
핵심은 2011년 설립 이후 계속 적자를 내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6년 11월 주식 시장 상장 전해인 2015년에 갑자기 1조9000억원의 순이익으로 흑자 전환할 수 있었던 배경을 둘러싼 분식회계 여부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 가치를 기존 장부가액에서 공정가액으로 변경하며 순이익을 냈다고 보고했고, 이 과정에 대해 분식회계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과정에서도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거래소는 2016년 성장 유망기업 요건을 도입하면서 적자기업도 미래 성장성이 있으면 상장할 수 있게 심사규정을 바꿨다. 이를 두고 4년 간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위해 문턱을 낮춰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일었다.
회계처리 위반이라는 이번 금감원의 결론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양측 간 갈등에는 더욱 불이 붙는 형국이다. 심병화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전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외부전문가와의 협의를 통해 회계기준을 적용한 것일 뿐 분식회계가 아니다"라며 "해당 회계처리로 부당한 이득을 취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증권 검사에 쏠린 눈…삼성생명 지분 논란 여전
최근 금융당국과 삼성그룹 계열사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있는 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증권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배당사고에 대해 지난 달 11일부터 시작된 금감원의 현장점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는 물론 공매도를 사회적 이슈로까지 끌어올린 사건인 만큼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삼성증권에서는 지난 달 6일 오전 9시 30분 우리사주 조합원 직원들에게 28억3162만원의 현금배당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담당직원의 잘못된 전산입력으로 회사 주식 28억3162만주를 입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전 거래일 기준 주가를 기준으로 112조원 어치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를 받은 삼성증권 16명이 501만여주를 주식시장에서 매도하면서 당일 삼성증권 주가는 한때 전일 종가 대비 약 12% 가량 급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둘러싼 논쟁 역시 아직 금융당국과 삼성그룹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예전부터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임기 초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다소 사그라진 분위기이지만, 관련법 개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만큼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불씨로 남아 있다.
현재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삼성생명에게 특혜를 줄 수 있는 현행법의 허점을 메워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은행과 금융투자사와 달리 보험사에 대해서만 투자 자산의 가치를 취득원가로 계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보험업법은 대주주나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을 막기 위해 보험사가 가질 수 있는 계열사 지분을 총자산의 3%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보험사의 투자 자산을 취득원가로 평가하는 현행법 상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5000억원대 수준으로 이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거래 중인 주가를 반영해 시가로 계산해 보면 해당 지분 가치는 20조원을 훌쩍 넘기며 총자산의 10%에 육박하게 돼 매각이 불가피하다.
◆총수 일가까지 여파 미칠까 촉각
이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금융당국과 삼성그룹 식구들 사이의 쟁점들 중에서도 더욱 시선이 가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생명에 관련된 사안이다.
우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건의 경우 삼성그룹을 넘어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5년 이 부회장으로의 그룹 승계 핵심 작업으로 지목된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보다 3배나 높게 평가되면서 기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봤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그 배경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는 이 부회장이었고, 다시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주주였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가 높아지면 제일모직의 가치도 올라가고, 결국 삼성물산과의 합병에서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 부회장이 유리해지는 구도가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분식회계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를 의도적으로 높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삼성생명이 들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역시 총수 일가 지배구조의 핵심 축과 맞닿아 있다. 삼성전자의 주주들 가운데 단일 주주로 최대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는 곳이 바로 삼성생명이다. 이어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즉,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 축소는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국내 재벌들의 복잡한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왔고 현재 금융당국이 그 첨병에 서 있는 모양새"라며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금감원의 지적이 개별 사안들이긴 하지만 그 끝의 상당수가 궁극적으로 총수 일가의 지분을 둘러싼 문제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재계에 미칠 파장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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