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박정민 "몰아붙이는 나, 조금 관대해지고파"
영화 '변산'서 주인공 학수 역
"방심하지 않으려고 노력"
영화 '변산'서 주인공 학수 역
"방심하지 않으려고 노력"
배우 박정민(31)은 스스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다. 적당히 해도 될 법도 한데, 고통스러울 만큼 스스로 괴롭힌다. 안 될 때는 내려놓은 것도 필요한데 박정민한테는 예외다.
박정민은 올초 '염력', '그것만이 내 세상'에 출연했고 '사바하', '사냥의 시간' 촬영을 마쳤다. 8월부터는 '타짜3' 촬영을 준비 중이다.
전작 '그것만이 내 세상'에선 서번트 증후군(사회성이 떨어지고 뇌 기능 장애를 가지고 만 기억, 암산 등 특정한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짐)을 앓는 진태로 분했다. 피아노에 천재성을 보인 캐릭터를 위해 죽도록 노력했다. 영화 속 진태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을 보노라면 감탄이 나온다. 박정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견고한 노력이다.
이번에는 무명 래퍼로 관객들을 찾는다. 영화 '변산'(감독 이준익)을 통해서다. '변산'은 '동주'(2016), '박열'(2017)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 세 번째 이야기다.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고향 변산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동창 선미(김고은)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학수와 선미를 비롯한 여러 인물을 통해 우리가 흔히 봐왔거나 겪었던 청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팍팍하고 지친 청춘의 삶을 웃프게(웃기지만 슬픈) 그려낸 게 미덕이다.
박정민은 극 중 무명 래퍼 학수로 분했다. 박정민은 상처를 품은 캐릭터의 감정, 어려운 랩, 마지막 춤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변산'은 박정민 매력의 결정체를 담은 작품이라고 할 만큼 박정민은 영화의 8할을 해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소격동에서 박정민을 만났다. 박정민은 총 11일에 걸쳐 언론과 일대일 인터뷰이다. 지칠 만도 한데 이 청년은 "일대일 인터뷰가 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이 감독은 그에게 "건국 이래 11일 동안 인터뷰하는 배우는 네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단다.
영화 속 학수는 까칠고, 거친 래퍼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매력 있다. 박정민은 "영화에서 멋있게 나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 난 잘 모르겠다"고 웃었다.
학수는 영화 속 모든 인물과 엮이며, 혼자 등장하는 법도 없다. 배우들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힘주고 연기하면 영화가 재미없을 것 같았어요. 상대 배우들과 주고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학수가 보여야 하는 부분에선 무언가를 해야 했지만, 관계에서 나오는 학수의 모습에 더 신경 쓰는 게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토크쇼 MC처럼 말이죠. 저보다 다른 배우들이 잘 해주신 덕에 영화가 재밌게 나온 듯합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 촬영 후 박정민은 꽤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다. 상업영화 첫 주연으로 나선 그는 많은 일을 겪으면서 부담감 등 여러 감정에 휩싸였고, '그릇이 크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부담감을 떨치려고 '변산'을 택했다.
"영화가 나오면 제 연기만 볼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연기도 안 좋게 보이고. 개봉 후에는 관객수를 하게 되더라고요. 예매율도 신경 쓰이고. 하루는 병헌 선배님께 여쭤봤어죠. 병헌 선배님도 관객수가 신경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경험이 쌓이면 조금씩 감정 컨트롤을 할 수 있대요. 제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거죠. 예매율을 보고 있으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고 생각해요. 이번에요? 이번에도 신경 쓰겠죠(웃음)."
학수가 시를 쓰는 래퍼라는 설정이 독특하다. 랩과 시가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랩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심장 박동에 맞춰 전달한다. 박정민은 직접 가사를 쓰고 비트를 만드는 등 곡 작업에도 참여했다.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얀키가 랩 작업을 도왔다.
박정민은 "랩은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문학적인 형태이자 대중문화"라며 "학수의 심경이 담긴 랩을 써야 해서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했다. 연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후반부 아버지와 함께 한 장면은 세대 간의 갈등을 담았다. 박정민은 "아버지와 학수가 얽힌 관계를 풀어내는 장면이었다"며 "아버지와 학수의 관계가 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주먹 한 방이었다. 아버지를 한 대 때리는 학수의 감정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군무신에 대해선 "남 앞에서 춤추는 게 가장 부끄럽다"며 "최대한 재밌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학수를 변하게 하는 인물을 동창 선미다. 선미는 학수를 좋아하는 동시에 따끔한 직언까지 날린다. 배우는 "학수에게 선미는 자신의 어머니와 닮은 사람"이라며 "좋은 여자를 만나면 남자는 성숙해진다"고 했다.
선미 역을 맡은 김고은은 박정민에 대해 "몸이 걱정될 만큼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박정민은 "영화에서 할 게 너무 많으니까 안색이 어둡게 변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자기 학대죠. 경험이 없으니깐 모든 걸 다 이고, 지고 가려고 했어요. 다행히 고은이가 현장 분위기를 이끌어줬어요."
박정민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기대를 받는 아들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이나 공무원을 가는 게 가족의 바람이었다. '공부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건 죽도록 외우는 것뿐이었다. 국영수 모두 암기하며 시험을 봤다. 공부를 왜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꿈도 없었어요. 공부를 안 하면 혼났죠. 제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혼나는 게 더 무서워서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암기력은 좋았지만, 응용력과 이해력은 달렸어요."
고등학교는 기숙학교였다. 당시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건 공부뿐이다. 그 시절 유행했던 대중문화는 모른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묻지도 못한 채 책만 봤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게 우선 아닐까요? 스파르타식으로 몰아붙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즐기면서 해야 하는데 그냥 무작정 공부만 했어요."
중학교 때 배우라는 꿈을 잠시 품은 그는 그 꿈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가족에게 창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예술적 감각은 타고 났다. 중학교 3학년 때 단편 시나리오를 쓰고, 문예대전을 냈는데 금상을 받았다. 사형수와 중학생이 이메일을 주고받은 내용의 시나리오였다. 그때까지 소설책 한 권도 안 본 그였다. 이후 고등학교 방송반에 들어간 그는 카메라 촬영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려대 인문학부에 입학한 박정민이 연기한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가 심했던 건 예상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배우 박정민'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친구들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저만 몰랐어요. 공부만 했으니까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싫으니까."
배우의 길을 택해도 혹독한 자기 관리는 여전하다. 안 되도 해야만 할 것 같고,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만 할 것 같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피아노를 연습할 때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 건가 싶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죠. 무언가 안 되면 가끔은 쉬어도 되는데 전 그게 잘 안 돼요. 스스로 혼내는 거죠. 이젠 좀 관대해지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박정민은 "관대해져도 방심하고 싶진 않다"며 "긴장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역시 충무로 대세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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