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드는 서민가계의 그림자… 생보사 환급금 '공포'
올해 들어 5개월 만에 해지환급금 10조원 돌파…전년比 23.8%↑
불경기에 보험 깨는 고객들…IFRS17 앞두고 생보사 부담 눈덩이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계약을 해지하는 고객들에게 돌려준 돈이 올해 들어 5개월 만에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의 추세 상 올해 생보사들의 연간 해지환급금 규모는 최근 10년 내 최대 액수를 기록했던 지난해 규모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이어지는 불경기 속 보험을 깨는 소비자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당장의 실적은 물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에 따른 재무 위험까지 대비해야 하는 생보사들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9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내 생보사들이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10조9874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8752억원) 대비 23.8%(2조1122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지환급금은 보험 가입자가 상품 만기 전 계약을 해지할 때 보험사가 돌려주는 돈을 의미한다.
생보사별로 보면 같은 기간 삼성생명의 해지환급금 지출이 2조3701억원으로 유일하게 2조원을 넘기며 가장 많았다. 이어 한화생명이 1조4510억원, NH농협생명이 1조2099억원, 교보생명이 1조221억원으로 1조원 대를 나타냈다. 이밖에 동양생명(6242억원)·흥국생명(6111억원)·ING생명(5455억원)·신한생명(5264억원)·KDB생명(4690억원)·미래에셋생명(3812억원) 등이 이 기간 해지환급금 상위 10개 생보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올해 국내 생보업계의 연간 해지환급금은 2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몰아치던 2008년 당시 18조원 가까이 불어났던 생보사들의 해지환급금은 2009년 13조원 대 초반까지 떨어지며 안정세를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이후 해마다 1조원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더니 2016년에 마침내 20조원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22조1086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해지환급금은 전반적인 경기 상황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가계는 지갑 사정이 나빠질수록 당장 급하다고 여겨지지 않은 보험 비용을 줄이는 경향을 보이는데, 불어나는 해지환급금은 그 만큼 보험 계약 유지를 포기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국내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59만3284원으로 전년 동기(476만2959원) 대비 3.6%(16만9675원) 감소했다. 이런 와중 지난해 8만8917원이었던 국내 가계의 월평균 보험료 지출은 올해 들어 6만2148원으로 30.1%(2만6769원)나 줄었다.
이에 따라 늘어나는 해지환급금은 생보사들의 실적에 마이너스 요소일 수밖에 없다. 저축성 보험의 축소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고객 이탈에 따른 비용도 이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올해 1분기 국내 생보사들의 당기순이익은 1조2324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5740억원) 대비 21.7%(3416억원) 감소했다.
이런 흐름이 생보사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부담스러운 이유는 IFRS17 본격 도입을 앞두고 있는 시점 때문이다. 2021년 IFRS17이 적용되면 보험사의 부채 평가 기준은 현행 원가에서 시가로 바뀐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과거 최저보증이율을 앞세워 저축성 상품을 대거 판매했던 생보사들로서는 IFRS17의 이 같은 부채 평가 방식은 큰 부담이다. 최근 생보사들이 저마다 자본 확충과 동시에 비용 절감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다. 저축성 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말 기준 2200만명에 이른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황에 더해 불어난 가계 부채로 소비 심리와 가계 재정 위축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보험업계는 당분간 계약자 이탈과 이에 따른 해지환급금 증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IFRS17 시행을 앞두고 재무 건전성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속화하는 고객 이탈은 생보사들의 짐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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