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윤계상 "'범죄도시' 전, 항상 벼랑 끝에 있었죠"
영화 '말모이'서 류정환 역
"진짜처럼 보이고 싶었다"
영화 '말모이'서 류정환 역
"진짜처럼 보이고 싶었다"
'범죄도시'에서 극악무도한 악역을 연기한 윤계상(40)이 이번엔 선량한 지식인으로 돌아왔다. 우리말을 소재로 한 영화 '말모이'를 통해서다.
말모이(감독 엄유나)는 실제로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들이 1910년대 최초로 편찬한 우리말 사전이다. 출판은 못 했으나, 수기로 쓴 원고 일부가 남아있다. 또 영화 속에서 조선어학회가 사전을 만들기 위해 일제 감시를 피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았던 비밀 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윤계상은 극 중 말을 모아 나라를 지키려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역을 맡았다. 유력 친일파 인사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변절을 부끄러워하는 인물이다.
민족의 정신인 말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믿는 캐릭터다. 그는 일제에 맞서 주시경 선생이 남긴 원고를 기초로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말모이를 이어간다.
1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윤계상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인데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고, 해진 형과 또 한 번 호흡하고 싶었다"며 "전작 '범죄도시' 속 장첸을 벗어나고 싶어 선택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윤계상은 시사회 때 "연기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친일파 아버지를 둔 류정환이 사전을 만들고자 하는 신념을 표현하는 게 가장 힘들었단다. 류정환이 조선어학회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진짜였으면 했다.
엄 감독은 류정환을 딱딱한 인물이자 사전을 만들기 위해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으로 표현하라고 주문했다.
배우로서 '벼랑 끝에 몰린 적이 있느냐'고 묻자 "'범죄도시' 전에 매번 벼랑 끝에 있었다"고 밝혔다. '범죄도시' 이전에는 혼자 벼랑 끝에 선 느낌이라면,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는단다. 예전과 달리 지금에는 작품 전체에 더 신경 쓴다고 했다. "과거엔 제가 맡은 역할을 소화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어요. 근데 이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또 다른 의미를 찾습니다."
엄 감독은 또 윤계상의 입에서 대사가 자연스럽게, '툭' 튀어나오게 하라고 했다. 윤계상은 "류정환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길 바랐던 것 같다"면서 "어려운 일을 해내신 그 시대 인물을 연기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역사를 한 만큼 참고한 자료가 있었을 법하다. 배우는 "류정환을 연기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했고, 여러 인물을 참고했다"며 "류정환처럼 고집이 있다"고 했다.
유해진과 윤계상은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한 영화 '소수의견'(2013)에 동료 변호사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윤계상은 유해진을 두고 "내겐 하늘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둘은 영화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러운 호흡을 보여줬다. 유해진의 연기는 모든 게 좋단다. "유해진 형이기 때문에 판수가 탄생했어요. 형을 존경합니다."
'말모이'는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쓰고 있는 한글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아울러 자신을 희생하며까지 지킨 한글을 바르게 써야겠다는 책임감도 들게 한다.
배우는 평상시에도 외래어를 많이 쓴다는 걸 자각했다"며 "한글을 볼 때마다 새롭다고 느낀다"고 했다.
아이돌 지오디 출신 배우인 윤계상은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범죄도시' 이전엔 배우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며 "연기를 그만두고 싶어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탕아',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여도 괜찮아요. 지금 웃을 수 있는 게 좋습니다. '범죄도시'가 흥행해서 부담감을 느끼냐고 묻는데 흥행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장첸이 화제가 돼서 패러디되는 게 신기하긴 했습니다. 하하. 확실한 건 '범죄도시' 이후에 들어오는 역할이 다양해졌습니다."
윤계상은 올해 지오디 20주년 공연도 했다. 배우와 가수를 넘나드는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덕에 활동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가 혼자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워요. 재결합했다는 게 정말 감사합니다. 연기할 때 멤버들이 응원해줘서 고맙고 행복하고요."
어느덧 데뷔 20년을 맞은 그는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 기분이 든다"면서 "나 자신도 유연해졌다. 부모님의 마음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됐고,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1세대 아이돌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묻자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윤계상은 지오디 멤버들과 JTBC '같이 걸을까'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머리에 깊게 박힌 생각도 나왔다. 그러다 주변 존재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해탈의 경지까지 갔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경지까지 갑니다. 하하. 결국은 저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감사하게 돼요. '인생은 이런 여정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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