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기업인과의 대화, 결론은 "투자, 고용 늘려라"
최저임금, 상법개정 관련 기업 호소 무시…"규제 철폐 기대도 안해"
문 대통령 기업인과의 대화, 결론은 "투자, 고용 늘려라"
최저임금, 상법개정 관련 기업 호소 무시…"규제 철폐 기대도 안해"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130여명에 달하는 기업인을 버스에 실어 청와대로 소환했다.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겠다는 명분이었다. 130여명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려면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릴지 생각은 해봤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건 명분과 속내는 다를 테니 상관없을 터였다.
버스에 실려 가는 기업인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경영 애로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숙제거리를 받으러 가는 자리임을 직감한 듯 했다.
문 대통령의 인사말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고용과 투자는 기업의 성장과 미래동력 확보를 위한 기반이며 동시에 국가경제와 민생에 기여하는 길입니다.”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우리 경제의 최대 당면 현안입니다. 지금까지 잘해오셨지만 앞으로도 일자리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용 창출에 앞장서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작년 2분기부터 전체 설비투자가 감소세로 전환한 아쉬움이 큽니다. 여러 기업들이 올해부터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사업 발굴과 투자에 더욱 힘써주기 바랍니다.”
결국 투자와 고용에 힘써달라는 얘기였다. 물론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지원하고 혁신 노력을 뒷받침하겠다는 다짐도 내놓았다. 하지만 기업인들이 듣고 싶은 내용은 없었다.
그동안 재계는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운 정부의 폭주에 끊임없이 경고음을 내고 기업 고용여력을 악화시키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 근로시간 단축,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법개정, 기업 경영원리에 배치되는 협력이익공유제 입법 등을 중단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그 어떤 정책에도 재계의 호소를 반영하지 않고 있고,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부터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새해를 시작했다.
그들이 오랜 기간 인정하지 않다가 뒤늦게 인정한 경제, 고용, 투자 지표 악화의 원인이 최저임금 등 ‘소득주도성장’에 관련된 각종 논란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재계와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제기됐음에도 불구, 끝내 고집을 꺾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주요 기업 대표들을 불러 모아놓고는 투자와 고용 확대를 요청했다. 재계의 경고를 무시하고 경제를 망쳐놓더니 그 뒤처리를 재계에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이날 문 대통령이 주재한 기업인과의 대화를 보는 재계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업인들의 고충을 들어주겠다고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좋지만, 실질적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는 정책, 규제들이 그대로고, 바꿀 생각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다못해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에서만이라도 재계 입장을 반영해줬더라면 기업들의 최저임금 부담이 어느 정도 경감될 수 있었는데, 개정을 강행한 순간 정부가 경제는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재계에서는 정부에 규제 철폐는 고사하고 강화만 하지 말아달라는 분위기”라며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문제에서 기업들의 요구가 전혀 반영이 안 돼 거의 기대감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기업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진정성 있는 자세로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태도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가 과거 정부에서 연초마다 기업을 압박해 투자와 고용계획을 받아내던 관례의 연장선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그나마 정부 경제 관련 부처장이 돌아다니며 투자·고용계획을 받아냈는데 이번에는 집합시켜서 한 번에 받아내는 모양새”라고 비꼬았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라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이런 만남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기업인들이 진정성을 느낄만한 규제 개혁 등 강력한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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