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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허둥대는 대일외교


입력 2019.07.08 07:00 수정 2019.07.08 10:03        데스크 (desk@dailian.co.kr)

<김우석의 이인삼각> 외교관계 미래지향 되려면 해법도 미래지향 되어야

문재인정부, 국내정치에 활용하는 ‘친일 대 빨갱이 프레임’ 폐기해야

<김우석의 이인삼각> 외교관계 미래지향 되려면 해법도 미래지향 되어야
문재인정부, 국내정치에 활용하는 ‘친일 대 빨갱이 프레임’ 폐기해야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의 로고가 붙어 있는 상자를 밟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의 로고가 붙어 있는 상자를 밟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일본정부의 대한 경제제제가 현실화됐다. 안타깝게도 우리정부는 뾰족한 대책없이 우왕좌왕할 뿐이다. 국내정치에서처럼 호기로운 태도는 찾아 볼 수 없다.

정부여당과 언론은 아베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경제제제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베정부가 ‘너무 무례하고 치사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수많은 전쟁이 합리적으로 이해 안 되는 이유로 발생했다. 대북제제에서 보듯이 ‘경제제제’는 살상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의 바로 전단계의 전쟁이다. ‘치사한 전쟁’은 부지기수다. 국익을 위해 이기기 위해 ‘치사한 전략’도 쓸 수 있고, 때로는 써야만 한다. 국제외교는 도덕률이 적용되지 않는 전형적인 영역이다. ‘이기는 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몸소 체험했다. 성리학을 존숭하던 조선이 무지막지한 왜(倭)에 무도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침탈을 당했다. 실재하는 역사적 부조리에서 도(道)나 덕(德)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가의 임무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실패하고 하소연해봐야 웃음꺼리가 될 뿐이다.

지난 해 11월 이후 일본의 경제보복 조짐이 있어왔다. 지난 연말연초에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부터 걱정이 퍼져갔다. (마침 호황을 거듭하던 반도체가 같은 시기 불황으로 돌아섰다). 이때쯤 반도체 핵심부품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소문이 돌자, 삼성 등 반도체생산기업들은 속으로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반(反)대기업정책이 지속되며 대놓고 정부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다양한 루트로 정부에 우려를 전달했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무슨 자신감인지 ‘설마 일본이?’로 일관했다.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먼저 움직였다. 많은 의원이 일본을 찾았으나, 일본정치인들은 문전박대했다. ‘한국정부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일본의 공세도 강화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일의원연맹에 특사의원 파견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정가의 반응은 ‘만나기 부담스럽다’였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정부 외교라인은 손을 놓고 있었다. 주한 일본대사는 대놓고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협박했다. 이런 와중에 주일 한국대사는 중재는 고사하고 국내에 의미있는 정보를 아무것도 보고하지 못했다. 재일기업과 교포들이 ‘이럴 거면 왜 대사를 파견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왜 이런 ‘외교참사’가 벌어졌을까? 외교가에서는 외교부의 ‘일본통’들이 모두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안부협상’과 ‘강제징용관련 사법농단사건’으로 유능한 일본통 외교관들은 쫓겨나거나 숨어 버렸다는 것이다. 주일 한국대사는 일본전문가도 아니다. 역대 일본대사는 우리 외교의 핵심축이었다. 미국의 의중도 일본대사가 일본 최고위층을 만나 확인할 정도였다. 외교부장관의 비현실적인 외교인식과 전문성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긴 지금처럼 모든 사안을 청와대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외교부장관의 외교인식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청와대가 끔쩍 안하니 장관의 상황인식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외교부장관이 정통성있는 외교전문가였으면 좀 달랐을지 모른다. 지금 장관은 외교관들이 보기에 ‘통역사출신 아웃사이더’ 장관이다. 그가 국회답변에서 ‘일본이 경제제제를 하면 맞대응하겠다’고 할 때 많은 전문가들이 혀를 찾다. 경제제제가 공식화되기 전에는 끝까지 ‘지켜보자’로 일관하는 것이 외교책임자의 수사다. 그러더니 경제제제가 시작되자 엉뚱하게 ‘내용을 검토 중’으로 돌아섰다. 외교는 프로토콜이고 순서다. 그걸 잘 구사하는 것이 전문성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이 정쟁만 하지 말고 다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역할이다. 문제의 원인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일본의 한국 법원판결에 대한 불만(강제징용노동자 판결과 일본기업재산 압류 등)이다. 우리는 ‘3권분립’ 정신을 들어 반론을 폈으나 설득력이 커 보이지 않는다. 외국정상은 한국을 ‘하나의 정부’라고 전제하고 한국대통령과 협상한다. 외국이 한국정부 대통령과 한 약속은 ‘대한민국의 약속’인 것이다. 대통령이 ‘행정부수반’인 동시에 ‘국가원수’이기 때문이다. 외국정부가 한국의 3부를 따로따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건 내정간섭으로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3부는 사전에 서로 협의하고 조율하여 국제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렇게 맺어진 약속은 국가의 약속이므로 매우 비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부처 간 협의의 중심에 국내법과 같은 지위를 갖는 국가간 조약이 있다. 또 부처간 협의수단은 각부 절차와 과정의 조율이 될 수도 있다. 지난 정부 때 한일 양국은 국가원수끼리 ‘화해와 치유재단’을 두어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일방적으로 파기됐다. 징용피해자 문제는 행정부와 법원행정처가 협의해 판결시점을 조율했다. 그러나 이 또한 ‘사법농단’으로 매도됐다. 외국에서 보기에는 대한민국은 하나의 정부가 아니었다. 그러니 신뢰할 수 없고, 동맹이 될 수 없다. 일본이 우호적 관계를 상징하는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우리를 제외하는 명분을 준 것이다.

원인이 확인되면 해법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외교관계가 미래지향이 되려면 해법도 미래지향이 되어야 한다. 선진국 문턱에 있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일 더 당당한 외교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자기세대의 범죄도 아닌 사안으로 일본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65년 한일협정관련 논쟁은 이제 접고, 우리정부와 그때 혜택을 본 기업이 기금 등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보상화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전세대의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미래세대에게 전세대의 악감정을 전수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교부가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랴부랴 기금방식의 해법을 제시했다. 한일 양국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징용피해자에게 배상을 하자는 것이다. 올 초부터 제안됐으나, 청와대의 거부로 무산된 대안이었다. 청와대는 ‘화해와 치유재단’을 떠올렸을 것이다. 양국이 합의한 이 재단도 거부했는데, 새로운 기금방식을 제안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급해지자 외교부가 다시 제안했고, 청와대는 반대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는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친 대안은 상대에게 거부되었다. 그사이 일본의 불신이 훨씬 커진 것이다.

물론 일본의 참의원선거라는 정치적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정부와 같이 선거가 없었다면 이 카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태도다. 한국당은 7일 “일본경제보복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제제가 ‘선거용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곧 징용피해자 사건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예정되어 있다. 일본기업의 국내재산 압류도 그쯤 결정될 것이다. 그러면 일본정부는 일본국민에게 ‘그동안 뭐했느냐’며 성토를 받을 것이 뻔하다. 그러니 그 전에 우리정부에 경고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선거가 끝났다고 없었던 일처럼 넘어갈 수 없다. 정치적 결정이 관성이 생기면 특별한 명분이 없는 한 지속되게 돼 있다. 우리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우리정부가 일본에 제제해제의 명분을 주어야 한다.

첫째 미국의 중재다. 전통적으로 한일갈등은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차원에서 중재해 왔다. 일본은 숭미(崇美)라고 할 정도로 미국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아베는 한술 떠 ‘트럼프의 애완견’이란 말을 들을 정도다. 미국도 일본을 대북제제와 대중국 패권경쟁의 핵심우군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정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半信半疑)다. 그래서 일본은 무역제제의 명분으로, 자신들이 한국에 수출한 전략물자가 북으로 넘어가는 정황이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으면 여론전밖에 방법이 없는 우리정부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이런 억지 명분을 불식시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허울뿐이 된 한미동맹을 복원해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북핵공조’는 필수다. 대중국 패권경쟁에서도 현명한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일본과의 조속한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대법원판결의 파급력을 줄이기 위해서도 양정상이 회담을 해 법적 지위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위안부합의’ 수준의 결론을 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일본통’ 외교관들을 중용해야 하고, 외교부장관도 조속히 교체해야 한다. 그것이 한일 신뢰회복의 시작이다.

셋째, 국내정치에 활용하는 ‘친일 대 빨갱이 프레임’을 폐기해야 한다. 현 정부는 정적을 “친일”로 몰아 청산대상으로 몰고 “진짜 빨갱이”에 대해 무던히 관용을 보인다. 북한에 대해서 무장해제하고, 일본에 대한 무력시위를 마다치 않는 비이성적인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런 프레임은 국민을 선명하게 양분해 국력이 모이지 못하게 한다. 외부에 적을 만들 뿐 아니라, 내부도 와해시키는 자기 파괴적 전략이다. 외부의 적이 지금처럼 우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세계적 경제대국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이 세 가지는 기초일 뿐이다. 외교관계는 도자기와 같아서 깨지기는 쉽지만 다시 붙이기는 힘들다.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 물을 담아야 한다.

“소서(小暑)때는 새각시도 모심는다”는 속담이 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오늘(7. 7일)이 절기로 ‘소서’인데 본격적인 여름의 입구다. 속담은 오늘까지 모를 심지 않았으면 1년 농사를 망치니, 농사에 투입되지 않는 새각시까지 힘을 모아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란 뜻이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그동안 이유야 어떻든, 국가농사를 위해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청와대와 여권의 태도, 전략변화가 필수임은 말할 것도 없다.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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