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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신묘한 제작진 안목에 놀라다


입력 2019.09.27 08:20 수정 2019.09.27 08:00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모두에게 독 뿌리는 방송 아닌지 제작진 돌아봐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모두에게 독 뿌리는 방송 아닌지 제작진 돌아봐야

ⓒ홈페이지 캡처 ⓒ홈페이지 캡처

‘백종원의 골목식당’ 둔촌동 편 튀김 덥밥집에서 분노한 백종원은 업주에게 장사는 장난이 아니라면서 호통 쳤다. 그때 제작진은 ‘지금 필요한 건 절실함’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이어서 백종원은 “그게 없는 사람한테 이런 골목식당에서 로또를 줬을 것 같아서 배 아파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줘도 못 먹을 거 같고 준 게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이건 독이 된다니까. 사장님 인생에 독이 돼요.”라고 일갈했다.

튀김 덮밥집 업주가 너무나 무성의한 모습을 보이자, 백종원이 언제나 그렇듯 큰소리를 쳤고 화제가 된 것이다.

백종원은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방송홍보 기회와 전문가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인생에 독이 된다고 세 번이나 반복했다. 그런데 사실은 해당자에게만 독이 되는 게 아니다. 뒷목 잡는 백종원에게도 독이 되고, 공분하는 시청자 정신건강에도 독이 되고, 정말 절실한 다른 자영업자에게도 독이 된다. 무성의한 업주가 방송 홍보 로또 맞는 모습에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모두에게 독이 되는 무성의한 업주에 대한 로또 수혜. 이게 반복되는 게 문제다. ‘골목식당’을 보면 정말 절묘하게도 백종원의 뒷목을 잡게 하는 준비 안 된 업주들이 매 지역마다 반드시 한 곳 이상 등장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기본이 전혀 안 된, 말도 안 되는 업소가 예컨대 방송에서 선정된 네 집 중 한 곳이라고 해도 25%다. 두 곳이면 50%다. 모든 지역에서 이런 업소 1~2곳이 꼬박꼬박 등장한다는 건 대한민국 식당 중 25~50%가 말도 안 되는 업소란 뜻이다. 무작위 선정이 아니라 도와줄 가치가 있는 업소를 고른 것이기 때문에 이 비율은 더 올라간다. 좋은 업소를 골라도 25~50%가 엉터리 업소라면 전체 업소 중에선 엉터리 업소 비율이 훨씬 높다는 뜻이다.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되는 데도 그런 업소들이 꼬박꼬박 1~2곳씩 등장한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그런 집만 골라내는 제작진의 신묘한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백종원은 이런 말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남의 밑에서 남의 가게에서 십 몇 년 이십 몇 년 준비를 하고 정말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 남보란 듯 좋은 가게 번듯한 가게보다도 골목 안에 들어와서 준비한 사람 많아요. 그래도 빛을 못보고 망한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에 비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아요? 준비 하나도 안 하고 들어왔잖아 지금.”

준비가 하나도 안 됐다는 얘기다. 백종원이 이렇게 금방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가 큰 업소를 제작진이 선택한 것이 단지 우연 또는 실수일까? 그런 우연 또는 실수가 모든 지역에서 반복된 것일까?

결국 제작진이 이런 업소를 일부러 물색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막장드라마처럼, ‘골목식당’도 ‘욕받이’를 일부러 출연시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만든다는 의혹이다.

이번 튀김 덮밥집편에선 업주가 주위 사람들을 비난하는 모습도 내보냈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인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음식과 상관없는 모습인데도 굳이 방송에 내보낸 건 인성비난을 유도했다는 의심도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욕받이’ 출연자가 등장하면 화제를 모을 순 있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모두에게 독이 된다. 시청자는 이 프로그램이 정말 절실하게 준비한 업주를 도와주는 착한 방송으로 알고 보는데, 정작 제작진은 욕받이 막장드라마를 진행하고 있었다면 문제다.

이런 의혹을 사지 않으려면 백종원이 뒷목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 ‘기본이 안 됐다’고 호통 쳐야 하는 그런 업소들을 잘 걸러내야 한다. 백종원이 호통 칠 때 제작진은 ‘절실함’, ‘간절함’ 같은 키워드를 자막 처리한다. 그런 가치를 그렇게 내세우는 제작진이 일부러 절실함, 간절함이 결여된 이들을 골라 방송에 내보낸다는 인식이 생기면 시청자는 실망할 것이다. 모두에게 독을 뿌리는 방송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제작진이 돌아봐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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