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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임상 3상이라는 '죽음의 계곡', 정직하게 건너야


입력 2019.10.02 06:00 수정 2019.10.02 06:06        이은정 기자

기업관계자의 내부정보 부당 이용, K바이오 신뢰도 하락 부추겨

임상 3상 성공률 10% 안돼… 로또 당첨식 기대는 금물

기업관계자의 내부정보 부당 이용, K바이오 신뢰도 하락 부추겨
임상 3상 성공률 10% 안돼… 로또 당첨식 기대는 금물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임상 3상 결과와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헬릭스미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은 미국 서부의 사막 이름이다. 서부 개척 시대에 서부행 지름길을 찾던 탐험대가 이 사막에서 많은 동료를 잃은 뒤 이런 이름을 붙였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임상 3상 통과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보니 이를 두고 죽음의 계곡에 빗대어 말한다.

신약의 임상시험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임상 1상에서는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의 부작용을 확인하고, 임상 2상에서는 소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한다. 끝으로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실시한 뒤 각국 의약품 규제기관에 판매허가를 신청한다.

임상 3상은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데다 성공 가능성이 낮아 글로벌 제약사들조차 어려워하는 관문이다. 게다가 임상 3상 단계의 신약후보물질은 발굴부터 연구까지 1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된 만큼 실패했을 때 회사와 투자자들이 받는 충격이 크다.

올 초부터 국내 바이오업계엔 임상 실패 소식이 날아들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에 이어 신라젠의 '펙사벡'이 임상 3상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엔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후보물질 '엔젠시스'의 미국 임상 3상마저 약물 혼용이라는 이례적인 일로 사실상 실패했다.

미국에서도 임상 3상 성공률은 10% 이하일 정도로 실패 사례가 적잖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K바이오의 좌절은 어처구니없는 이유가 많다. 코오롱은 약의 주성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헬릭스미스는 임상 3상 과정에서 진짜약과 가짜약이 혼용돼 결과를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의 신뢰를 깎아먹는 업체들의 행태가 더해지면서 K바이오에 대한 신뢰도도 추락했다.

신라젠의 한 임원은 임상 3상 중단 발표 1개월 전에 88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매도했다. 헬릭스미스의 경우 김선영 대표의 친인척과 자녀가 재임상 공시 전 주식을 팔아치웠다. 바이오 신뢰 회복의 마지막 희망으로 꼽히는 메지온도 최근 등기 임원이 주식을 매도했다.

바이오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대표이사나 임원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업 신뢰도나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내부정보를 팔아 기업 관계자들만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시장 안팎의 지적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죽음의 계곡 통과는 성공할 수 있다고 큰 소리만 쳐서 되는 게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꼼꼼한 준비, 시행착오를 받아들이고 정직하게 공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현재 K바이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다.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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