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남 이태오 역, 다양한 심리 표현
김희애·한소희 호흡도 합격점
이 정도면 '국민 욕받이'이다.
방송이 끝나면 인터넷은 이 배우에 대한 욕으로 가득하다. 어쩜 이리 뻔뻔할 수 있냐고, 어쩜 그렇게 지질할 수 있냐고 말이다. JTBC '부부의 세계' 속 불륜남 이태오 역을 맡은 박해준 얘기다.
방송 초반 이태오는 다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였다. 아들과 잘 놀아주는가 하면 아내 지선우(김희애 분)도 살뜰하게 챙긴다. 다만 일에서는 '한 방'이 없었다. 영화 제작이 연이어 무산된 탓이다. 그래도 아내가 능력 있는 의사이니 먹고 사는 덴 지장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부잣집 딸 여다경(한소희 분)과 바람이 난다. 이후 이태오는 뻔뻔함을 넘어 자기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 여다경을 끊지도, 아내를 벗어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급기야는 다경의 부모 앞에서 불륜을 폭로한 아내에게 도리어 화를 내며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다.
아내에게 빌붙은 것도 모자라, 불륜녀의 아빠에게까지 빌붙으려는 이태오는 그야말로 지질함 그 자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태오는 박해준이라는 배우를 만나 극대화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출신인 그는 31세, 배우로서는 늦은 나이에 데뷔했다. 영화 '화차'(2012)의 악랄한 사채업자부터 시작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미씽: 사라진 여자'(2016), '침묵'(2017), '독전'(2018),'악질경찰'(2019), '나를 찾아줘'(2019) 등에서 묵직한 역할을 소화했다. 박해준하면 떠오르는 게 악역이다. '독전'에서 선보인 극악무도한 악역 연기는 충격을 선사했다.
악역만 떠올리면 섭섭하다. tvN 드라마 '미생'(2014)에서 냉철한 천 과장을, '나의 아저씨'(2018)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스님 역을 맡아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영화 '4등'(2016)에서는 비운의 수영 천재, 전 국가 대표 출신 수영 코치 역을 맡아 입체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당시 정지우 감독은 "천재의 괴팍함과 분방함, 순수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기질, 좋은 연기와 태도, 전직 수영선수로 보이는 신체조건을 모두 갖춘 배우"라고 극찬했다. 지난해 개봉한 코미디물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서는 악역 이미지를 벗고 코미디 연기를 매끄럽게 펼쳤다.
극 중 전 부인과 이혼했지만, 여전히 전 부인을 향해 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태오는 박해준의 다채로운 필모를 통해 가지각색의 빛을 낸다. 이태오는 확고한 가치관이나 생각을 가진 인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다. 김희애와 마주했을 때 긴장감이 감도는 이유다.
큰 키와 훤칠한 외모 덕일까. 9살 연상인 김희애와도, 18살이나 연하인 한소희와도 썩 잘 어우리는 점도 매력이다. 모완일 PD는 제작발표회에서 "한국사회 특성상 남자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아저씨가 되는데 박해준에게서는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고 밝혔다. 상대 역을 맡은 김희애는 "난 컷 소리가 나면 흥분하고 감정이 멈추지 않는데,박해준을 보면 감정 전환이 빨라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다. 괴물 같고 어마어마한 배우"라고 극찬했다.
'부부의 세계'가 2막을 연 가운데 '부부의 세계' 홈페이지 속 이태오의 인물 소개란에는 인물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문구가 추가됐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아들을 포기하지 않겠다 결심한 것이 더 큰 불행을 자초할 줄은 몰랐다."
점점 더 문제적 캐릭터로 거듭날 이태오. 박해준이 또 어떤 얼굴을 드러내며 '국민 욕받이'의 정점에 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