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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53만 명이 '바보'가 된 청와대 국민청원, 이대로 괜찮나

  • [데일리안] 입력 2020.05.21 07:00
  • 수정 2020.05.21 05:17
  •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허위 청원 꾸준히 증가…취지 좋지만 신뢰성 논란 여전

靑, 국민에 '진실성' 요구 전에 제도 보완 고민 선행해야

청와대는 19일 청와대는 19일 '저희 25개월딸이 초등학생 5학년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제목의 국민청원이 '허위사실'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모두 깜빡 속았다. 생후 25개월된 딸이 초등학교 5학년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 저런 끔찍한 내용을 '주작(자작극 또는 날조)' 할 수 있느냐는 분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청원에 동의한 53만명만 한 순간에 '바보'가 됐다. 청와대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청원자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청원은 국민이 직접 참여해 의제를 만들어가는 국민소통의 장이다. 국민 청원의 신뢰를 함께 지켜내 주시길 당부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청원자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했지만, 사실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의 '신뢰성' 문제다.


허위 국민청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11월 '잔혹한 개 도살을 멈추게 해달라'며 개 한 마리가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영상과 함께 올라온 국민청원은 21만 여명이 동참했지만, '가짜뉴스'였다. 태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개가 청원자에 의해 우리나라 개농장에서 망치로 맞아 죽은 개가 됐다. 경기도의 한 공원에서 청소년들에게 폭행·감금을 당했다는 등의 청원도 허위로 밝혀졌다.


청와대의 국민청원 제도는 미국의 '위더피플'을 벤치마킹했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게 그 취지다. 하지만 청원 게시에 제한이 없는 탓에 무분별한 내용이 쏟아지는 건 물론, '매크로 프로그램 조작설' '조선족 동원설' 등의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취지 살리기에 취중한 나머지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건 명백한 오점이다.


정작 문제 해결이 간절한 사람들의 청원은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묻히는 상황에서 허위 청원의 증가는 허무함을 안겨준다. 사실과 달라도 '이슈'가 되면 진실로 둔갑되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허점이 여실이 드러난다.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재벌의 아들을 살해한 뒤 그의 행세를 하며 살다가 시체가 발견되면서 결국 모든 범죄를 들키게 된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용어는 여기에서 유래됐다. 이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바람을 현실로 믿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의미한다.


누리꾼 사이에서 이번 허위 청원과 관련해 '리플리 증후군'이 언급됐다. 청원자의 '주작'에 분노하면서 말이다. 국민청원이 '국민이 직접 참여해 의제를 만드는 국민소통의 장'이라는 청와대의 입장처럼, 국민 스스로 진실성 있는 청원만 올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국민청원 운영 방식, 즉 청와대에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국민을 '리플리'로 만들기 전에 국민청원 제도의 신뢰성을 높이는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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