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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임금 인상분 취약계층에?…"기업 돈 뜯어 생색내기"


입력 2020.06.24 06:00 수정 2020.06.23 21:24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코로나 위기에 임금은 임금대로 올려받고 사회연대기금 부담 기업에 떠안겨

2018년 금속노조 '하후상박 연대임금'도 인상률 요구에 못 미치자 '없던 일'로

정세균 국무총리(가운데)가 18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총리 왼쪽은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오른쪽은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운데)가 18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총리 왼쪽은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오른쪽은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연합뉴스

노동계가 올해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취약계층에 내놓는 ‘사회연대’ 방안을 제안한 가운데, 기업들은 결국 사측의 부담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24일 재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양대 노총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제각기 올해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재원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양대 노총 위원장은 지난 18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사회연대’ 방안을 제안했다.


한국노총의 경우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사업장에서 ‘연대임금’ 교섭을 진행한 뒤, 임금상승분의 일부로 ‘상생연대기금’을 조성해 비정규직과 사내 하청근로자들에게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 역시 비슷한 방안을 마련했다. 올해 임금 상승분의 일부를 ‘공동근로복지기금’으로 조성해 취약계층의 노동 조건 개선에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노동계 고통분담 절실한데...임금 인상에 사회연대 비용까지?


이같은 양대 노총의 제안은 그동안 대기업 노조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영세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 사내하청 근로자들을 위한 대기업 노조의 희생을 전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계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임금 협상에서 통상 최초 요구안과 제시안에서 노사의 이견이 크기 마련인데, 애초에 노조 측이 임금 인상 요구안에 사회연대 비용을 얹어 교섭에 임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올해는 대표적인 고임금 사업장으로 불리는 자동차, 정유, 철강, 조선 등 대부분의 제조업종이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동결이나 소폭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양대 노총은 올해 고임금 사업장 임금 인상분의 ‘전부’도 아닌 ‘일부’를 기금 조성에 사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즉, 대기업 노조도 임금을 올려 받되, 사회연대 기금 조성을 위한 비용을 추가로 요구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노조는 ‘더 많이 인상할 것을 조금만 인상하고 나머지를 저임금 근로자들을 위해 사용했다’고 생색만 내면 되지만, 기업들은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이중으로 비용 부담을 안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금속노조 '하후상박 연대임금' 되풀이...정부 동조시 기업 압박 우려


사실 노동계가 저임금 근로자들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연대임금’을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의 가장 규모가 큰 조직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 2018년 ‘하후상박 연대임금’이란 지침을 내렸다. 당시에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고임금 사업장의 임금인상분 일부를 저임금 근로자들 지원에 사용한다’는 명분을 앞세웠었다.


금속노조는 그해 임금인상 요구안을 기본 7.4%로 하되 현대차와 기아차, 한국GM 등 임금수준이 높은 완성차 3사만 5.3%로 낮추기로 했다. 대신 기본 인상률과 완성차 3사 인상률 차액만큼을 중소 협력사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 지원에 사용해 사회양극화 해소에 일조하겠다는 논리였다.


결과적으로 기업 입장에선 7.4%의 임금 인상을 동일하게 요구받는 건 마찬가지였고, 사측에서 노조의 최초 요구안을 100% 수용하는 경우는 없으니 ‘하후상박 연대임금’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 시장 판매 급감에 따른 실적 악화로 평균 임금이 9000만원을 넘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7.4%나 올려줄 여력이 없었다. 한국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부도 위기에 내몰린 형편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결국 현대차와 기아차는 노조 요구안(임금 5.3%·11만6276원 인상+사회양극화 해소 비용 2.1%·3만470원)의 3분의 1 수준인 4만5000원 인상에 그해 임단협을 타결했다. 한국GM은 최대주주인 제너럴모터스(GM)와 2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구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임금을 동결했다.


3사 모두 ‘임금이 7.4% 인상되면 그 중 2.1% 인상분을 중소 협력사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 지원에 사용하겠다’는 전제였으나, 실제 인상률이 그에 못 미쳤으니 연대임금도 없던 일이 됐다.


재계에서는 올해 노동계가 제안한 ‘사회연대’ 방안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각사 노조가 임금은 임금대로 인상을 요구하면서 사회연대 기금 마련을 위한 추가 비용까지 요구해 갈등만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올해는 노동계가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이같은 제안을 공식화한 상태라, 정부가 이에 동조할 경우 기업들에게는 더 큰 압박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노동계가 진정으로 사회연대를 생각한다면 임금 교섭이 끝난 뒤 고임금 사업장 위주로 기금을 마련하는 게 정상”이라며 “노사정이 함께한 자리에서 임금 인상분 중 일부를 기금으로 쓰겠다고 제안하는 건 결국 정부를 끼고 기업들을 압박해 자신들의 배는 채우고 남는 돈으로 저임금 근로자를 돕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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