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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의 핀셋] ‘보톡스 균주전쟁’,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


입력 2020.07.09 07:00 수정 2020.07.08 17:44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보툴리눔톡신 균주 도용 논란… 막대한 소송비용 투입

“우리 기업끼리 피 터지게 싸워 미국 기업 좋은 일했다” 지적도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 6일(현지시간) 메디톡스가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예비판결을 통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자료사진) ⓒ각사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 6일(현지시간) 메디톡스가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예비판결을 통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자료사진) ⓒ각사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 6일(현지시간) 메디톡스가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 예비판결을 통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 나보타(수출명 주보)를 10년간 미국에 수입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오는 11월 6일 최종판결까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된 소송에서 ITC 예비결정이 최종에서 뒤집힌 사례가 거의 없다. 하지만 최종판결 이후 60일 이내에 CAFC(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할 수 있는 기회도 남아있어 보톡스 전쟁의 끝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6년부터 시작된 균주 전쟁에서 누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느냐를 되짚어 보면 결국 모두 잃은 것이 더 많아 보인다. 메디톡스는 지난해 4분기에만 약 163억원을 소송 비용으로 썼고, 대웅제약도 100억원 이상 비용을 들였다.


그뿐인가. 이번 ITC 소송으로 대웅제약은 1년 동안 잘 수출해 온 자사 보톨리눔톡신 제제 주보를 10년간 미국에 팔 수 없게 될 상황에 처했다. 아울러 대웅제약은 소송 상대방인 메디톡스와 앨러간으로부터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끼리 해외에서 싸우다가 미국 기업에 좋은 일만 했다는 자조적인 얘기도 나온다. 원래 ITC는 미국에 수출된 외국상품이 미국 관련업계에 피해를 주었는지 제소를 심사,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독립행정기관이다. 자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웅제약의 주보가 10년간 수출 금지되면 미국 기업 엘러간이 가장 이득을 보는 건 자명한 일이다.


현재 미국 보툴리눔톡신 시장은 엘러간의 보톡스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엘러간 눈치를 봐야 하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제치고 곧바로 미국시장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메디톡스는 2013년 액상형 보툴리눔 톡신제제 ‘이노톡스’의 한국 제외 세계 판권을 미국 파트너사인 엘러간에 넘겼다. 그러나 기술을 이전받고도 5년 동안은 앨러간이 임상을 진행하지 않아 이대로 기술이 사장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었다. 현재 엘러간 주도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지만, 아직 허가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렇다 보니 미국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한 앨러간이 한국 제품의 진출을 막기 위해 이노톡스 판권을 사들이고, 대웅제약을 ITC에 제소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이 아주 허무맹랑한 얘기 같지는 않다.


이제 와서 "우리가 남 좋은 일만 했다"며 허심탄회하게 두 회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합의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업계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상 한국 두 기업이 패자로, 엘러간이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등 주요 국가들은 자국 산업보호라는 명목으로 각종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내 제약사의 갈등 상황을 미국 기업이 교묘하게 이용해 중간에서 이득을 봤다는 세간의 평가를 흘려듣기 어려운 이유다.


기업 간 경쟁을 흔히 전쟁에 비유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국가도 이념도 초월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부지리 상황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 기업끼리 피 터지게 싸워 타국 기업 좋은 일 시켰다”는 지적을 듣는 일 만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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