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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40년 맞은 김승연 회장①] 뚝심경영 40년...한화 45배 성장


입력 2020.08.01 07:00 수정 2020.07.31 22:11        이건엄 기자 (lku@dailian.co.kr)

매출 1조6천억에서 71조6천억으로 성장…재계 7위 달성

서비스·레저 분야 굵직한 족적…국내 최대 콘도 체인 확보

석유화학 등 주력사업 구조조정 통해 외환위기 파고 넘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한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한화

지난 1952년 설립된 한화그룹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성장하는데는 2대 총수인 김승연 회장의 절대적인 공헌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화약이었던 회사를 석유화학·태양광·금융·방산·항공우주 등에 걸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으로 만들었다. 한화그룹의 역사와 함께 그 절반 이상을 함께 해 온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화그룹은 창립 후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을 발판삼아 성장을 이어왔다. 고(故) 김종회 창업주가 화약사업을 통해 기틀을 다진 이래 기계공업과 화학, 금융,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한화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한화그룹의 모태는 고(故) 김종회 창업주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한국화약 주식회사(현 ㈜한화)다. 김 창업주는 전쟁으로 파괴된 조선화약공판 인천공장을 복구하고 원천기술이 없어 생산을 하지 못했던 ‘다이너마이트’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김 창업주는 기계공업 진출을 위해 1964년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했고 이듬해에는 한국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현재 그룹의 중심역할을 맡고 있는 화학사업에도 진출했다.


◆최장수 총수 성공비결은 M&A…화학부터 레저까지 일사천리


한화그룹의 성장은 김 창업주의 아들인 김승연 회장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승연 회장은 김 창업주가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타계하면서 29살의 어린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올랐다.


이는 10대 그룹 총수 취임 연령인 48세인 점을 감안하면 20여년 정도 빠른 셈이다. 최태원 SK 회장(38세)과 구광모 LG그룹 회장(40세)도 평균에 비하면 어린 나이에 총수 자리에 올랐지만 김승연 회장에 비해선 늦은 편이다.


그는 1977년 태평양건설(현 한화건설) 해외수주담당 이사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듬해 사장으로 취임했다. 1980년 한국화약그룹 관리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그룹 회장에 오른 뒤 올해까지 3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재계 최장수 회장을 지내고 있다.


선대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승연 회장은 숱한 M&A를 통해 그룹 외형확장을 꾀했다. 주력인 석유화학 분야는 물론 서비스와 레저 사업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그 결과 1981년 1조60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지난해 기준 71조6000억원으로 키우며 성공신화를 썼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순위에 한화그룹은 7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리조트 산정호수 안시 전경ⓒ한화 한화리조트 산정호수 안시 전경ⓒ한화

실제 김승연 회장은 취임 이듬해 한양화학과 한양화학지주, 한국다우케미칼 3곳을 인수해 화학사업을 경쟁력을 강화했다.


기존 한양화학이 생산했던 접착제와 잉크 등에 사용된 폴리염화비닐(PVC)은 물론 폴리에틸렌(PE), 염화바이닐(VCM)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벨기에 솔베이사와 독일 바스프사와 각각 합작해 한양소재, 한양바스프우레탄을 세우며 화학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김승연 회장의 M&A감각은 서비스·레저 분야에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우선 현재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모태인 명성콘도를 운영하던 정아그룹을 1985년 인수했다.


덕분에 410개의 객실을 갖춘 럭셔리 부티크 호텔인 더 플라자를 비롯해 12개 직영 리조트와 4800실 이상의 객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콘도미니엄 체인을 보유한 거대 레저 사업을 거느릴 수 있게 됐다.


이듬해에는 ‘갤러리아’의 모태인 한양유통을 인수해 유통업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양유통이 운영하던 쇼핑센터를 시작으로 현재의 갤러리아 백화점과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위기에서 빛난 뚝심과 카리스마…그룹 구심점 역할


김승연 회장의 뚝심은 한화그룹이 1997년 닥친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는데 있어서도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 그룹의 부채가 11조1382억원에 달했고 이에 따른 부채비율도 1214%를 기록해 재계 안팎에서 그룹의 존폐를 고려해야 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김 회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에 닥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김 회장은 먼저 1998년 구조조정본부를 신설했다. 이를 통해 합작회사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고 그 결과 외환위기 전 32개였던 계열사 수는 15개까지 줄었다.


실제 첨단소재 사업 진출을 위해 독일 바스프사와 만든 합작회사 ‘한화바스프우레탄’ 지분 50%를 1200억원에 모두 바스프에 넘겼다.


그룹 성장의 기반이 됐던 기계공업과 석유화학 사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화기계가 일본정공과 초정밀 베어링 생산 및 판매를 위해 만든 합작사 한화NSK정밀 지분 50% 역시 일본정공에 매각했다. 이후 한화에너지(현 SK인천석유화학), 한화에너지프라자(현 현대오일뱅크) 등의 매각도 이어졌다.


이외에도 SKF한화자동차부품, 한화GKN(매각가 19억원) 지분을 각각 스웨덴 베어링 업체인 SKF와 영국 기계부품회사 GKN 자회사 오토모티브드라이브라인에 넘겼다. 이로 인해 한화그룹의 자산규모는 1년 새 12조원에서 7조원으로 감소했지만 8조원에 달했던 차입금을 3조원으로 줄이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후 김승연 회장은 그룹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금 특유의 M&A 감각을 통해 한화의 제 2 전성기를 열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5년 삼성에서 방산·화학계열사를 인수한 빅딜이 꼽힌다. 당시 인수했던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탈레스 ▲삼성토탈 등 4사는 현재 한화그룹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옛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 인수를 통해 금융그룹 초석을 다진 것도 신의 한수였다.


재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은 M&A 감각을 통해 한화그룹을 현재의 위치까지 올려놨다”며 “특유의 뚝심과 카리스마로 기업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등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말했다.


사진은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19’ 에서 선보인 (주)한화의 불꽃 연출 모습.ⓒ한화 사진은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19’ 에서 선보인 (주)한화의 불꽃 연출 모습.ⓒ한화

이건엄 기자 (lk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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