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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코로나 행운에 취해 있다


입력 2020.10.06 09:00 수정 2020.10.06 16:08        데스크 (desk@dailian.co.kr)

4.15 총선 압승 이어 국정 운영 동력 코로나에서 얻어

광화문 차벽은 팬데믹을 권위주의 정치에 악용한 사례

8.15 광복절 집회 후 코로나19의 폭발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단체가 개천절 집회 강행을 예고한 가운데 지난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 경찰들이 차벽을 설치해 통행을 차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8.15 광복절 집회 후 코로나19의 폭발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단체가 개천절 집회 강행을 예고한 가운데 지난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 경찰들이 차벽을 설치해 통행을 차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필자와 같이 1970~80년대를 젊은이로 살았던 사람들은 지하철역 입구 등에서 전경(도시 시위 진압을 주목적으로 운영된 군 복무 대체 전투경찰)들로부터 검문을 당해 보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순간의 모멸감이란 당해봐야 알 수 있는 종류였다. 독재 정권 밑에 사는 것도 숨이 막히는 일인데, 백주(白晝)에 길을 가다 난데없이 신분증과 소지품을 수색 당하니 그 정권의 최고 자리에 있는 이와 그 밑에 있는 사람들, 또 그들의 지시를 군말 없이 이행하고 있는 비슷한 나이의 충견(당시는 그렇게 생각이 돼 죄 없는 그들에게 증오심이 든 게 사실이었다), 전경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으로 몸을 떨었다.


이번 개천절 주말에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경찰에게 4~6차례나 검문을 당한 시민이 있었다는 보도는 한국의 시계를 40년 전으로 돌려놓은 것이었다. 경찰 버스 수백 대를 레고처럼 맞대 세워 놓아 대로 양편을 각각 2중으로 장벽을 쳐 놓고 그 대로상엔 개미새끼 한 마리 없는 사진은 하늘에서 만리장성이 보이는 양상과 매우 흡사했다. 그야말로 산성(山城)이었고, 소름이 돋는 초현실주의 영상 작품 같았다.


이것이 혹시 해외 토픽에 나지 않았나 걱정될 정도이다. 만약 세계 사람들이 이 사진을 봤고, 그 이유를 읽거나 들었다면 “아하, South Korea가 코로나 방역을 잘했다고 하더니 저런 식으로 해서 얻은 성과였구나!”하고 혀를 찼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과 이 정권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특히 코로나 방역은 정치와 무관하게 이겨내야만 하고 그런 점에서 문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광화문 산성’ 둘러치기가 뭐가 잘못됐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 이유를 정말로 모른다면 이렇게 답을 말해 주겠다. 개천절 집회를 하겠다고 한 사람들은 8.15 전광훈 집회 때와 달리 여론과 당국의 반대를 받아들여 일부 1인 차량 시위로 변경했고, 그 나머지가 마스크도 철저히 쓰고 규모도 자의반 타의반 소규모로 줄여 정부 규탄 집회를 열려고 했을 뿐이었는데도 당국이 이를 원천봉쇄했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제한된 의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압한 것이다.


또 열렸다 해도 참석하려고 했던 이들은 다수가 대학생이 아닌 중노년 층이다. 80년대 5공 치하에서처럼 기습 시위를 벌일 수 있는 기동력도 없는 사람들이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SNS가 있고 비교적 활발하게 반정부 구호를 외칠 수 있는 공간과 매체가 많은데, 왜 굳이 광화문에 몰래 숨어들어가 벼락치기 시위를 벌여야만 하겠는가? 그런데도 경찰은 전두환 정권의 전경들처럼 인근 직장인들을 몇 차례씩 불러 세워 신분증을 확인하고 통행 이유를 심문했다.


집회 주도자와 참석 예정자들은 애초에 나라의 중심지에서 정권을 성토하는 회포를 한번 풀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하니 차량 몇 대씩으로 바꿔서 플래카드와 깃발 시위로 대체하겠다고 물러섰거나 마스크 끼고 소규모 집회를 하겠다고 했지만, 당국은 이마저도 허용을 안 한 것이다.


원천봉쇄는 형평성과 과학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 조치였다. 당국은 광화문 집회는 철저히 틀어막으면서 서울대공원 등 행락객들이 더 많이 모인 곳들은 방치했다. 바이러스가 과천에서는 전염이 안 되고 광화문에서만 특별히 더 잘 전파된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정부는 갖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결국 ‘문재인 퇴진’ 같은 구호와 피켓이 등장하는 반정부 시위라서 앨러지 반응을 보인 셈이니 2020년 대한민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전락한 꼴이다. 팬데믹을 권위주의 정권 식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이용한 후진국적 사례이다.


집권 민주당의 4.15 총선 압승의 가장 큰 배경은 코로나 선방(善防)이라고 필자는 총선 후 <데일리안>에 기고한 글 (https://www.dailian.co.kr/news/view/886683)에서 정리한 바 있다. 야당의 공천 잡음이나 막말,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같은 것들보다 방역 당국이 바이러스 퇴치 일을 잘하고 있고, 계속 잘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는, 코로나 팬데믹을 준전시 상황으로 받아들인 유권자들(특히 여성들)의 표가 대거 1번 후보들로 쏠린 결과였던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 방역 성공은 사실 이런 국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는 물론 감시와 낙인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을 빼 놓으면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걸 잊지 말고 기세등등하지 말아야 한다(위정자 아닌 국민이 나라를 지켰다는 것은 나훈아가 이미 말했다). 그 공을 정부가 독차지해 악용하려는 시도를 이번 광화문 산성 쌓기처럼 계속 하려고 하면 곧 국민들에게 그 수작이 들통 나게 될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낙인과 감시 또한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는 사실도 지적해야만 하겠다. 확진자 발생 후 유명 음식점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무차별 SNS 테러를 가하고 자식이 방역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자기 어머니를 고발하는 정도로까지 광기(狂氣)를 보이는 건 사회의 성숙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조선시대 한명회의 5가작통법(五家作統法)이나 북한 김일성의 5호담당제(五戶擔當制) 식의 이웃, 가족 간 감시와 고발은 코로나가 끼치는 해악보다 더 큰 손상을 우리 민주 사회에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화문 산성 사진이 세계에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방역을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 옛날 양반가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검, 잘못을 저지른 가족 처단의 도구)처럼 휘두르고 있다. 아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코로나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해 다수 의석을 휩쓸었지, 굵직한 실정(失政)이 터질 때마다 코로나가 재확산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그 실정의 정도만큼 내려가지 않지, 신통한 행운이 거듭돼 위기를 잘도 모면하고 있다.


대통령 문재인과 민주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은 지금 코로나 행운에 취해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국정을 주취(酒醉) 상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과반수가 넘는 국민이 거짓말을 한 ‘정의부장관’ 추미애를 자르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우리 공무원이 해상에서 북한군에 사살되고 소각되었어도 코로나 방역 차원으로 이해해 주는 얼빠진 자세를 취해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소수 중노년 국민들이 반정부 집회를 가지려고 하니 거대한 차벽을 둘러 봉쇄하는 80년대식 폭압정치를 자행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실력이 아닌 행운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그것도 국민의 공포심에 의존하는 팬데믹 행운 통치는 그 약발이 언젠가는, 어쩌면 곧, 다하게 돼 더 이상 재미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국민의 냉엄한 심판이 내려질 텐데, 이것이 문재인과 그의 세력이 집권 후 처음으로 받아들 진정한 성적표가 될 것이라고 본다.


ⓒ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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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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