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대비 '기업 환경 개선'이 해법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어느덧 경제도 4분기에 진입했다. 정부는 거듭되는 추경 편성과 양적완화 등 돈풀기 전략만 되풀이할 뿐 이렇다할 반전의 경기부양 카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침체된 경기 회복은 결국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거미줄 규제로 이미 '규제공화국'이라 불리는 가운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할 시 충격을 흡수하고 기업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법제 정비가 시급하다는 진단이 따른다.
특히 코로나와 같이 외생적으로 촉발된 위기 속에서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한 돈 풀기에만 급급하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 정책 기조 속 올해 70조원 가까이 추경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는 국내는 물론 중국 등 해외 서플라이체인(supply-chain)을 마비시키면서 생산과 소비 위기를 동시에 촉발했다"며 "생산이 담보되지 않은 환경에서 소비 활성화를 위해 돈을 풀게 되면 생산 구조를 왜곡시키고 물가 상승을 부추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소비 주체와 생산 주체에 대한 균형 있는 지원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코로나가 지나간 후 새로운 환경이 도래할 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게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안재욱 교수는 "코로나 쇼크 가운데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건실한 기업의 생산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서포트하는 것이다"며 "그러면 코로나가 지나간 후 유지됐던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회생하면서 공급 체계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출기업 맞춤형 지원책 마련돼야
산업화 시대 낡은 규제 옷 벗어야
기존 산업-4차 산업 융복합 절실
경제계는 무엇보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 대책을 마련해주길 고대하고 있다.
김문태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21대 국회가 코로나 이후 기업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법안을 발의해주길 바란다"며 "정부도 함께 기업 현장 실태를 종합적이고 합리적으로 검토해서 대안을 강구하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수출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수출기업들을 향한 맞춤형 지원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부적으론 수출 다변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산업체들은 중국과 일본 등 특정국 수출 의존도가 높아 위기 대응력이 떨어진다. 수출 교역국, 품목, 방법 등에서 다변화를 꾀해야 하는데 재원과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의 역량으론 쉽지 않다.
산업화 시대에 세팅된 규제 틀이 기업이 새로운 산업을 발굴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몇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산업 패러다임 변화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사업 모델 다변화를 꾀할 수 있도록 법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규제를 받는 대표적 분야는 기존 산업과 4차 산업 간 융복합이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산업도 첨단기술 융복합을 먹거리로 삼기 위한 신호탄을 계속 쏘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융복합 환경 조성을 위한 법제 개선은 걸음마 단계다. 정부 역시 AI·ICT 등을 탑재한 드론, 자율주행차, 친환경산업 등 신성장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김문태 팀장은 "새로운 산업 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기존 제조업, 서비스업에도 AI·ICT, 데이터, 네트워크와 연계하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며 "융복합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관련법을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일 산자중기위 국정감사에서 "기존 주력산업도 스마트화, 융복합화, 친환경화를 지속 추진해 고부가 유망품목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며 "산업 디지털 전환 촉진법을 조속히 제정해 법체계를 정비하고 산업 전반에 데이터, 네트워크, AI 기술의 접목을 촉진함으로써 가치사슬 전반을 혁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판국에 기업을 옥죄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 회복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 경제는 이미 갖가지 기업 규제로 생산 단가가 치솟고 법인세가 오르는 등 기업들에 부담을 주는 구조가 됐다"며 "코로나가 터졌는데 또다시 기업규제3법 등을 내놓으면서 기업들이 내수·수출을 뒤로하고 내부 혁신에만 골몰해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협소한 시각에서 내놓는 기업 규제 입법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단편적인 규제는 코로나 위기를 지난 이후 논의와 토의를 거쳐 마련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땐 기업 금융지원 지속해야
수익보다 대출이자 더 큰 기업 급증
생산성 검증된 한계기업 지원 절실
코로나 기간엔 기업 금융지원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저신용등급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 등 일련 기업 금융지원 조치들에 힘입어 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진입했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세와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지속해야 할 필요가 제기된다.
올해 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8조5000억원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그간 금융지원에도 불구하고 대출 증가폭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7~2019년 과거 3년 간 중소기업 대출은 월평균 3조5000원씩 증가했다. 올해 7월에는 6조4000억원, 8월에는 6조1000조원이다. 두달새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는 중소기업 자금 사정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계기업(재무구조가 부실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한계기업 중심으로 기업부채가 상당히 늘어났다. 내부적으론 단기자금 위주로 많이 늘었다.
기업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1 미만'이면 수익보다 금융기관에 갚아야 할 이자가 더 많은 상태를 뜻한다.
코로나가 올 연말까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국내 기업 이자보상배율은 2019년 3.7에서 2020년 1.1로 큰 폭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기업들 이자비용이 급격하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은 2.3에서 0.9로 떨어지며 수익보다 이자비용이 더 큰 상황에 직면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계기업들은 하반기를 지나며 계속해서 자금 압박을 받게 되고 매출액 줄어들며 결국 부도로 갈 수밖에 없다"며 "한계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채무를 연장해주든지 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네 차례나 추경을 단행하면서도 생산 효과와 고용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은 미약한 점도 지적을 받고 있다. 가계와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계기업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승석 부연구위원은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있었다면 한계기업 늘어나는 속도를 줄이면서 생산력을 담보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며 "하반기 반등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지금부터라도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내년 상반기 경기부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