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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고아성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선물같이 찾아온 영화"


입력 2020.10.19 00:00 수정 2020.10.18 18:5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롯데 엔터테인먼트 ⓒ롯데 엔터테인먼트

배우 고아성은 시대와 배경을 막론하고 약자 편에 기운 청춘의 표상을 연기했다. '설국열차', '우아한 거짓말', '오피스' 등에서 장르와 캐릭터는 다르지만 약자의 얼굴을 한 채, 결국 무엇이든 쟁취해내고야 만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마찬가지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입사 8년차, 회사 토익반을 같이 듣는 고졸 출신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고아성은 유독 '을'의 입장을 대변하는 연기를 주로 맡아왔는데, 자영 역시 청소와 커피타는 일이 주 업무지만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인물이다. 그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필모그래피를 살피며 자신이 닮고 싶은 인물을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반추했다.


"20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 할 때마다 다양한 시도를 했고, 그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모르게 제가 존경하는 역할을 맡아온 것 같아요. 자영도 완벽하진 않지만 믿음을 가지고 씩씩하게 승리하잖아요. 자영의 그런 점을 닮고 싶었나봐요."


고아성은 이타적이고 오지랖 넓은 자영을 체득하기 위해 스스로 성격을 변화시켰다. 내성적이었던 자신에게서 몰랐던 쾌활한 면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외향적인 면을 만들어냈다.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자영을 연기하려면 조금 바뀔 필요가 있었어요. 의도적으로 현장에서 텐션을 끌어올렸어요. 원래 먼저 말을 잘 건네지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 실제로도 제가 많이 변화된 걸 느껴요. 영화를 할 때마다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자영의 성격이 유지되고 있어요."


고아성, 이솜, 박혜수의 활약이 돋보이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각기 다른 여성 캐릭터가 살아숨쉬는 영화로, 여성의 서사가 유쾌하게 담겼다. 전작 '항거:유관순 이야기'(2019)에서도 여성이 주인공이고 연대하는 작품을 찍은 고아성은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는 현상이 반갑다.


"'항거'도 배우진들의 규모가 비슷했는데 영화에 따라 기운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많은 배우들이 함께하며 마음에 묵직한 구석이 있었다면 '삼진그룹 토익반'은 현장에 있을 때마다 든든한 결속력이 느껴졌어요."


극중 자영과 유나, 보람이 페눌 유출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다가가고,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직급 구분없이 직원들은 힘을 합쳐 벽에 부딪친 자영을 돕는다. 결국 통쾌한 한 방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자영과 '삼진그룹' 사람들을 보며 그 안에 녹아들며 고아성은 신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아무리 연기여도 상황이 만들어지면 저도 모르게 감정이 쌓여요. '나도 진짜 내 일 하고싶다'는 자영의 대사와 그 일을 해냈을 때, 배우로서 개인적으로 통쾌했어요."


ⓒ롯데 엔터테인먼트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자영·유나·보람의 돈독한 관계는 실제 만나본 고아성에게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박혜수의 팬이라고 밝히며 후배지만 멋있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청춘시대', '스윙키즈'를 보며 너무 좋아했던 배우였어요. 연기를 하는게 매 순간이고 선택이잖아요. 배우는 작품을 통해 어떤 사람인지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혜수의 연기를 보면서 막연하게 멋있는 사람일 거란 예감이 들었어요. 매 순간의 선택이 담백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멋있었어요. 이렇게 만나게 돼 기뻤죠."


OCN '라이프 온 마스'(2018)에서도 90년대 일하는 여성인 윤나영 역을 연기한 고아성은 스스로 자가복제를 하지는 않을까 경계하기도 했다.뿐만 아니라 '라이프 온 마스'가 90년대 시대극이란 설정이 겹친다면 출연했던 영화 '오피스'(2014) MBC '자체발광오피스'(2017)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장인 캐릭터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중첩된다.


"혹시라도 제가 답습할까봐 노력했어요. 감독님께도 이런 걱정을 이야기 하니 드라마를 다 보고 리뷰를 써오셨더라고요. 감독님들께서 친근하면서도 약자의 얼굴을 한 그런 모습을 잘 끄집어내시는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기념으로 소품 하나씩을 가져오는데 오피스물을 찍을 땐 사원증을 가져와요. 이로써 저는 네 번째 사원증을 모았습니다.(웃음)"


자영은 극 중 가장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배우 조현철과의 기묘한 선, 후배 관계성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관람하는 재미 중 하나다.


"유나, 보람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영과 동수와의 관계도 흥미로웠어요. 전사도 깊을 것 같았고요. 자영이 먼저 입사했지만 동수가 승진하는 것을 보며 관계가 묘하게 역전됐을 것 같아요. 또 예전에는 자영이 동수에게 반말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존댓말을 썼을 것 같았고요. 조현철 씨가 연기를, 연기가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배우더라고요. 함께하는 입장에서 재미있었어요."


고아성은 이종필 감독과 작업하며 배움과 자극을 느꼈다. 이종필 감독은 한 신을 찍을 때마다 여러가지 버전을 준비해오고, 초 컷까지 계산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고아성은 그의 섬세한 디렉션과 진정성을 느낄 때마다 감탄했고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 있었다.


"영화 밖에 모르는 분이세요. 영화를 찍으면서 감동도 많이 받았어요.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장면마다 템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놀랐어요. 또 매일 아침마다 감독님이 종이 한 장을 주셨어요. 당일 촬영할 내용과 신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그걸 읽으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연기를 어려워하면 바로 캐치해서 조언도 해주시고,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같아요."


1997년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14살에 영화 '괴물'로 얼굴을 알린 고아성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거리를 걸어볼 기회가 없었다. 첫 장면에서 바쁜 직장인 사이에서 출근을 하며 벅차오르는 자영의 얼굴은 실제로 벅차오른 고아성의 모습이라고. 그는 이 장면을 모니터하며 자신의 진짜 웃음을 발견했다고 즐거워했다.


"처음에 출근하는 장면에서 저의 진실된 웃음이 보이니까 한 번 잘 봐주세요. 많은 사람들과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어서 신나고 벅찼거든요. 100명의 연기자들과 출근을 상상하며 걷는데 어느새 제가 신나있더라고요. 역시나 모니터 속 제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였어요."


영화 속 자영이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이 남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자부심을 가지고 청춘을 회사에 다 바칠 준비를 하고 있던 자영에게 남에게 회사가 남에게 피해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이 자영을 일으킨다. 자영의 동기부여는 배우 고아성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나는 왜 일을 하는지,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하며 개인적으로 뭉클했어요. 제가 연기하는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봐줄 때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을 찍으며 이런 점들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고아성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자신의 성향을 밝게 바꿔준 만큼 관객들에게도 즐거고 건강한 에너지가 닿길 바라고 있었다.


"밝은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게 찾아온 선물같은 영화입니다. 관객들에게도 어려운 시기에 웃음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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