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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해?] '잔칫날', 울기 위해 웃어야 하는 남자


입력 2020.12.02 08:12 수정 2020.12.02 08:1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말이 안되죠. 제가 그래서 말도 못하고 아침부터 그렇게 웃었어요. 돈 때문에, 돈이 없어서"


돈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마저도 마음 놓고 슬퍼할 겨를이 없는 남자에게 공감과 연민이 느껴진다. 죽은 사람과 남겨진 사람 모두 돈으로 급이 나뉘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잔칫날'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버지를 잃은 날, 경남(하준 분)이 장례식장이 아닌 팔순잔치에 간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경남은 행사 MC를 하며 동생 경미(소준연 분)과 함께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두 남매는, 장례 음식, 제단 장식 비용, 수의, 입관 설명을 들으며 아버지를 잃었다는 걸 체감하기도 전에 돈 문제에 부딪친다. 경남은 장례를 준비하다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고 하루 일당 200만원을 챙겨준다는 소식에 남의 잔칫집으로 향한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잠시 접어두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잔칫집에서 곤란한 상황에 휘말려 발이 묶인다.


모든 것을 오빠의 결정에 따라왔던 경미는, 자신을 조여오는 상황들이 버겁기만 하다. 고군분투 끝에 장례식에 도착한 경남은 동생 경미와 함께 가족이 즐겁게 낚시를 했던 추억이 있는 바다에서 아버지를 보낸다.


경남 역을 맡은 하준은 아버지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에 지친 경남을 발군의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잔칫날'은 하준을 위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삶에 지친 연기로 대부분 극을 이끌어간다. 특히 잔칫집에서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오열신이 인상 싶다.


소주연이 연기한 캐릭터 경미는, 경남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홀로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감내하며 하염없이 오빠를 기다리는 경미의 역할을 튀지 않게 소화했다.


텅빈 장례식장, 조의금으로 5만원을 낼지 10만원을 낼지 고민하는 친구들, 아버지가 빌린 돈을 대신 갚아달라는 사촌 형, 상갓집은 잔칫집 같아야 한다며 잔소리를 해대는 고모들 등 현실적인 풍경이 현재의 장례식 문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의 옆에서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시골 잔칫집 사람들과 장례식장의 인물들의 행동이 무거울 수 있는 영화를 환기시킨다.


'잔칫날'은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작품상, 배우상, 관객상, 배급지원상까지 4관왕을 차지한 작품이다. 2일 개봉.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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