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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규제 포비아③]규제폭탄 끝인 줄 알았지?…중대재해법·집단소송법 줄이어


입력 2020.12.17 07:00 수정 2020.12.16 16:41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중대재해법, 인과관계 없이 경영자 처벌로 경영위축 불러와

집단소송법·징벌적 손해배상제, 기획소송 남발·기밀유출 우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왼쪽 세 번째)을 비롯한 경제단체 부회장단이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국회가 연말을 앞두고 통과시킨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개정안만으로도 기업들의 위기감은 커진 상태지만 정부와 범여권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당장 내년 1월 8일 종료되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며, 집단소송법 및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를 주 내용으로 하는 별도의 상법 개정안도 정부 입법으로 추진된다.


중대재해법은 그동안 산업현장에서의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 법안이다. 재계에서도 사망사고 예방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하고, 기업들의 안전경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나, 그 조치가 ‘사후처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과 업종별 대표단체 등 30개 협·단체들은 지난 16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중대재해법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입법 중단을 호소했다.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 발생시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책임자를 처벌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중대재해법은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 없이 무조건적으로 경영자와 원청에 책임과 중벌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해당 법안에서 언급된 ‘유해·위험방지’라는 의무범위도 추상적·포괄적이며, 사실상 과실범에 대해 2~5년을 하한형으로 징역형을 부과하고, 3~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부과하고 있다는 점은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은 물론,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재계는 주장하고 있다.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이 사고 예방 효과는 미미하고 기업 경영에만 악영향을 미쳐 경제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총이 발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기업 인식도 조사 결과’(국내 기업 654개 대상)에 따르면, 기업의 84.3%는 중대재해법상의 처벌 강화 조항이 ‘중대재해 예방에 효과가 없거나 영향이 미미하다고’ 답했다.


처벌 강화시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63.6%가 ‘사업주·경영책임자 실형 증가로 인한 기업 경영 리스크 증가’, 60.9%가 ‘과도한 벌금 및 행정제재로 인한 생산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특히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기업군으로 중소기업(89.4%)을 꼽았다. 중소기업은 사업주가 경영활동을 직접적으로 관장하고 있고, 평균 매출액도 4억원 수준인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상 과도한 처벌로 인해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안의 주요 문제조항. ⓒ대한상공회의소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도 기업들이 우려하는 대표적인 규제다.


법무부는 이미 지난 9월 집단소송법 제정안 및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를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며, 늦어도 내년 초에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앞선 3%룰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담은 상법개정안 통과 때와 마찬가지로 이들 법안도 재계와 야당의 반대에 개의치 않고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라 내년 3월 첫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집단소송법은 피해자 50인 이상인 모든 손해배상 청구를 집단소송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상법 개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모든 상거래에서 상인의 위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의 5배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들 두 법안의 입법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상호작용을 통해 기업들의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의 소(訴)가 집단소송으로 제기될 경우, 해당 기업은 소 제기가 알려지는 것만으로 브랜드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으며, 주가폭락, 신용경색, 매출저하로 이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로 경영상 피해를 입게 된다.


특히, 대기업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송대응력이 취약한 중소·벤처·영세 기업들은 막대한 소송비용 등 금전적 부담으로 인해 생존 위협을 더 크게 받고,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


법조 브로커나 직업적인 소송원고 등장, 변호사업계의 과당경쟁적 소송, 거액의 합의금을 노리는 외국의 집단소송 전문로펌까지 가세해 무리한 기획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소송 전 증거조사, 자료 등 제출명령, 주장 및 입증책임 완화, 국민참여 재판(배심원) 등으로 인해 기업의 영업비밀 등 핵심 정보의 유출 가능성도 크다. 이는 기업의 신기술, 신제품 및 서비스 개발은 물론 국가 차원의 신산업 촉진에도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재계는 이처럼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 법안들이 잇따라 입법 추진되면서 기업들이 규제 대응에 집중하느라 본연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통과된 규제 법안들로도 대응이 벅찬데, 계속해서 규제가 추가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며 “부작용은 전혀 고려치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대체 기업이 몇 개나 나가 떨어져야 폭주를 멈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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