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은행 신용대출 4일간 4500억 급증…은행권에 '관리하라' 재주문
정부여당 "자본시장 활성화"…금융권 "어느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혼란
금융당국의 신년 최대 과제인 '빚투‧영끌 잡기' 정책의 실기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규제정책의 목적은 유례없이 과열된 투자심리를 식히는 것인데, 정부여당은 오히려 경제성과로 내세우며 투자를 부추기는 엇박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최근 내놓은 대출규제 정책이 정부여당의 투자 독려와 맞물리며 시장 관계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투자를 독려하는데 금융당국은 대출을 철저히 관리하라고 하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냐"는 것이다.
우선 금융당국은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옥죄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금융감독원은 전날 주요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과 긴급 화상회의를 갖고 신용대출 실적과 신용대출 급증 상황을 점검했다. 금융권은 이날 회의를 '대출 자제령'으로 받아들였다.
통상 대출 점검 회의는 은행권이 제출한 총량 관리 계획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토가 끝난 이후 열리는데, 이번에는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열렸다. 새해 들어서도 이례적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실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34조1015억원으로 지난달 31일(133조6482억원)보다 4533억원 늘었다. 여기에 올해 들어서만 5대 은행에서 나흘간 마이너스 통장이 7411개나 새로 개설됐다.
금융권에서는 연초 이례적으로 늘어난 신용대출이 주식 투자 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한 신용융자잔액도 지난 8일 기준 20조3200억원으로 4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금융당국 대출옥죄기 '긴급진화'…정부여당은 "투자자는 애국"
'실물‧금융 괴리' 우려 커지는데…금융권 "어느장단에 맞추나"
금융당국은 주식시장으로 쏠리는 패닉바잉 현상에 대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사상 첫 '코스피 3000시대'를 축하하는 대신 "불안감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우려와 달리 정부여당이 동학개미를 우리경제를 떠받친 일등공신으로 꼽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G20국가 중 최고다", "우리 증시를 지켰다"고 추켜세우면서 일관된 정책 기조를 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자본시장 투자를 독려하는 공개 발언도 이어졌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동학개미들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투자하는 애국 투자자"라고 했다. 그는 "정치가 할 일은 풍성해진 유동성이 산업에 흐를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실물과 금융 간 괴리'를 꼽으며 투자에 신중을 당부하는 금융당국과는 정반대 기조다. 금융시장에서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사 관계자는 "대출을 틀어막고 수요에 대한 저항이 커지면 '왜 그렇게까지 막냐'고 할 것 아닌가"라며 "금융당국도 눈치를 보느라 가르마를 확실히 타주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에 '네들이 눈치껏 적당히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